금남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규방’ 공예 공모전에서 60대 후반의 경상도 상남자가 대상을 차지했다. 8회까지 이어온 공모전에서 남성이 대상을 가져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규방공예는 조선 시대 양반집 여성들이 바느질을 통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든 것에서 비롯된 전통공예로, 남성 불모지로 각인돼 왔다.
김훈동(69·대구 수성구)씨는 지난 3일 경기 수원시 수원전통문화관 예절교육관에서 제8회 전국 규방공예 공모전 시상식에서 ‘가을정원’이란 작품으로 대상인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차지했다. 수원시에서 주최하고 수원시규방공예연구회 주관으로 개최된 이 공모전은 최대 규모의 전국 단위 규방공예 행사다.
가을정원은 가을걷이가 끝난 어느 가을날 오후 거실에 앉아 창 밖의 정원을 1,500여 개의 삼베와 모시 조각으로 표현한 조각보 작품이다. 김씨는 이 작품에서 바느질의 풀림을 방지하기 위해 전통 바느질 방식인 쌈솔기법을 사용했다. 가로 110㎝, 세로 175㎝ 크기로 제작된 이 작품에 걸린 시간은 꼬박 2년이다.
차영순 심사위원장은 총평을 통해 “작가는 전통을 존중하는 소재와 기법에다 자신이 개발한 곡선 표현을 더해 창의적으로 작품의 주제를 살렸다”며 “심사위원 모두 김씨의 작품을 높게 평가했다”고 대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2017년 이 대회 우수상에 이어 2년 만인 올해 대상을 차지했다. 공모전 개최 이후 첫 남성 대상 수상자로 기록된 탓에 세간의 이목도 쏠렸다. 김씨는 “2017년에 첫 수상 때만 해도 ‘정말 본인이 한 것이 맞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남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 뿌듯하다”며 “규방공예는 특히나 남성의 참여가 거의 없는 영역이라, 호기심과 우려의 시선이 많지만 성별을 떠나 작품활동에만 열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의 이번 수상은 평소 가져왔던 바느질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파생됐다. 김씨가 처음 바느질과 인연을 맺게 된 건 2015년 6월이다. 2008년 퇴직 이후에도 꾸준히 어르신 반찬배달 봉사를 하던 도중 김씨 눈에 골목 한 켠의 규방공예 공방이 들어온 것. 일상 생활 속에 어깨 너머로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를 감상해왔던 그에겐 당연했다. 대금과 장구, 서예에도 취미를 가졌던 그는 바느질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그의 손은 자연스럽게 공방 문을 두드렸고 본격적으로 바느질 분야에 입문하게 됐다. 그는 1주일에 1번의 수업과 꾸준한 연습을 통해 4년간 바느질 꽂이, 노리개, 보자기 등 150여 개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주변사람들에게 작품을 나눠주는 재미로 시작했다가 바늘만 쥐고 있으면 마음과 기분이 안정되는 규방공예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김씨는 “이제는 아내도 바느질이 필요한 옷이 있으면 내게 맡길 정도”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씨의 꿈은 5년 후, 규방공예를 중심으로 서예와 그림 등 자신의 취미활동을 모두 포함한 개인전 개최다. 꾸준한 작품 활동을 위해 건강관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눈과 어깨, 목 등 바느질을 위한 체력관리를 위해 한 달에 4, 5번 꼭 산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가 등산을 즐기는 이유다.
“바늘에 실을 꽂을 때면 언제 이 천을 다 채울까 싶지만 한 땀 한 땀 연결하다 보면 어느새 바느질이 완성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는 김씨는 “규방공예의 아름다움을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구=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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