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하노이 ‘노딜’ 이후 7개월 만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재개된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렬로 막을 내린 배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협상 당일인 5일(현지시간) 북한 협상팀의 행적을 보면 ‘북한이 애초에 판을 깰 속셈을 갖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온다.
실제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등은 회담에 매달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회담 시작 2시간 만인 정오쯤 협상장을 떠나 차로 10분 거리인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약 2시간 ‘작전타임’을 가졌고 △협상이 끝난 후 5분 만에 문건(A4 용지 4장)을 읽어가며 결렬을 선언했다. 점심 작전타임 때 평양에서 ‘판을 깨라’는 지침을 받고 미리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애초에 이번 협상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전략을 세웠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자신들이 원하는 비핵화 상응조치(보상) 목록을 정한 후, 미국 측의 방안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바로 결렬을 선언하기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뒀다는 의미다. 협상장을 미련 없이 떠남으로써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도 염두에 뒀을 법하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체제 안전보장 및 제재완화 관련 최대치를 미국에 제시하며 ‘양보 못 한다’고 일방 통보하고 협상장을 나온 셈”이라며 “미국에 더 유연한 방안을 갖고 나오라고 강하게 압박하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김 대사가 귀국하던 도중 7일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기자들로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미국 측에 물어보라”면서 “미국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어떤 끔찍한 사변이 차려질 수 있겠는지 누가 알겠느냐. 두고 보자”며 위협성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에 매달렸다가 거부 당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경계심이 깔려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전략 하에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 입장에서) 하노이 때 당했던 것을 보복해주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협상 결렬의 근원적인 이유는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근본적인 시각차다. 북한은 ‘선(先) 신뢰조성→후(後) 비핵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곧장 북한이 핵 동결→불능→폐기 등 비핵화 조치 이행을 약속하면, 그 대가로 △북미관계 수립(연락사무소→수교) △평화체제 구축(종전선언→평화협정) △제재 국면의 변화(유예→완화→해제) 등의 보상을 ‘단계ㆍ병렬적’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측 방식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북한이 (협상에서 접점을 찾기보단) 초장에 판을 깨 기선을 제압하는 게 향후 협상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노딜 선언이 중국을 향한 메시지란 분석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설이 계속 나왔는데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며 “이에 중국에 ‘우리가 이렇게 협상을 위해 노력했는데 미국이 안 바뀐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방중 승인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식량지원 등 중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실무협상을 ‘명분’ 삼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은 연말 정상회담 전 실무협상을 2번 할 수 있다고 보고 1차 협상은 추가 양보를 압박하는 차원에서 ‘버릴 수 있는 카드’로 판단한 것 같다”며 “다만 미국에서 ‘북한에 끌려 다닌다’는 여론이 커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기대와는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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