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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살처분의 윤리

입력
2019.10.07 18:00
수정
2019.10.07 18: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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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에 따른 살처분이 계속되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동물해방물결 회원들이 살처분 당하는 돼지의 고통을 알리고 탈육식 동참을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에 따른 살처분이 계속되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동물해방물결 회원들이 살처분 당하는 돼지의 고통을 알리고 탈육식 동참을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돼지 사육이 시작된 것은 20세기 초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이 활발해진 뒤였다. 하지만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풍토병 같았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때문이었다. ASF를 일으키는 아스피바이러스는 아프리카 자생 멧돼지나 진드기가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자체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축으로 사육되는 돼지에 전염되었을 때는 치명적이었다. 케냐에서 첫 발병이 확인되기 10여년쯤 전인 1907년 ASF가 알려진 뒤 70년 넘도록 아프리카 대륙에서 돼지 사육이 활발하지 않았던 이유다.

□ 아프리카 이외 지역으로 처음 이 바이러스가 번진 곳은 포르투갈이다. 1957년 아프리카 중남부 앙골라에서 리스본에 도착한 항공기 잔반에서 ASF가 확인됐지만 당시는 통제가 됐다. 3년 뒤 앙골라에서 귀환한 포르투갈 군인이 가져온 돼지고기 제품에 섞여 있던 바이러스가 포르투갈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로 확산됐다. 1990년 대 후반 마다가스카르, 2007년 조지아 등 흑해 연안 동유럽으로 확산된 출발점도 아프리카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아시아 각국의 전염은 이렇게 해서 러시아에까지 이른 ASF 감염 돼지고기를 중국이 수입한 게 발단이었다.

□ ASF는 처방은 물론 백신도 없어 발병 시 대책은 살처분뿐이다. 이 과정에서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사태에서처럼 동물 윤리가 논란이다. 시민단체 동물자유연대는 최근 성명을 통해 ASF 살처분 현장에서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의식 소실 후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기본 원칙이 무시된 채 잔인한 방식의 무분별한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2012년 구제역 때처럼 살처분 인력의 트라우마까지 불러일으키는 생매장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 개정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는 가스법ㆍ전살법(電殺法)’ 등으로 ‘고통을 최소화하여야 하며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명시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ASF 발병시 처분 지침으로 이산화탄소 주입을 권하지만 이미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이마저 고통을 수반하므로 즉시 의식을 잃도록 하는 질소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관련 법안이 국내에서도 발의됐지만 농림부 반대로 폐기됐다. 대규모 살처분을 초래하는 공장식 사육은 당장 바꾸기 어려워도 좀 더 인도적인 살처분은 고민해봐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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