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학 학문 공동체] <2> 연구노동자 신세의 학문후속세대
“학문은 한 국가의 ‘뇌’에 해당하지요. 지금 대한민국은 그 뇌가 망가지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최근 마주한 이정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학문후속세대의 위기에 대해 이제 대응책을 마련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삼십 대 후반의 나이로 1995년 서강대 교수가 됐다. 포스트모던이 맹위를 떨칠 때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주목할만한 신진 철학자’로 꼽혔다. 하지만 3년 만에 스스로 대학을 그만 뒀다.
“보수적인 교수사회의 편견과 아집을 견디다 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전통적 개론 수업은 제쳐두고 시대적 해석을 가미한 특강을 훨씬 더 많이 했었죠. 학문은 기본적으로 역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해석을 선보이려 했던 그에게 대학사회가 보인 반응은 ‘왜 넘나드느냐’였다.
대학은 싫었으나 철학은 하고 싶었다.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2000년 철학에 진지한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받아들이는 대안연구공간 ‘철학아카데미’를 열었다. 가장 큰 성과는 이 교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열렬한 반응이 쏟아졌다. 하지만 한계 또한 분명했다. ‘제도권 밖’이라 자유로웠지만,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해주긴 어려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대 들어 대학엔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었다. 대학 교수는 이제 적절한 학문적 아이템을 개발, 돈을 유치해야 하는 ‘개인 사업자’이기를 요구받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그래서 비극적이라 했다. 저 나름대로 뛰어 놀 줄 아는 신진학자를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그는 “이웃 일본만 해도 2, 3년을 주기로 눈에 띌만한 책을 내놓는 신진 학자들이 등장한다”며 “하지만 한국에서는 최근 10여 년간 선배 학자들의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는 후배 학자 연구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우선 과제를 ‘안정적 연구환경 제공’을 강조했다. ‘강사-부교수-정교수’로 이어지는 고용의 연속성이 보장돼야 한다. 오랜 시간 학생을 가르친 강사에게는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확실히 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래야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이들도 부담 없이 공부하고 학계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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