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나 뜨거운 교감
“한국 영화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개성과 독창성이 있어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대표적이죠.”(코스타 가브라스) “가브라스 감독님은 변화무쌍한 작품 세계를 보여 주셨어요. 저도 끝없이 도전하고 실험하는 선배들을 본받으려 노력해 왔습니다.”(박찬욱)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세계적인 영화 대가 코스타 가브라스(86) 감독과 박찬욱(56) 감독이 세대와 언어를 뛰어넘어 뜨겁게 교감했다. 6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 무대에서 오픈 토크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만난 가브라스 감독은 한국 영화에 아낌없는 애정을 표했고, 박 감독은 그런 가브라스 감독에게 존경과 흠모의 뜻을 전했다.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은 10여년 전 박 감독이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5) 리메이크를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박 감독은 “‘액스’는 필생의 프로젝트”라며 “소설 원작을 가브라스 감독이 프랑스어 영화로 만들어 판권을 소유하고 있고 나는 그 영화를 영어로 다시 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브라스 감독과 제작자인 그의 아내와 아들도 이 프로젝트에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그리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해 온 가브라스 감독은 그리스 혁명가 그레고리 램브라스키 암살사건을 다룬 ‘제트’로 1969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1982년 ‘의문의 실종’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영화상 각본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박 감독은 “대학 졸업할 무렵에 본 ‘의문의 실종’이 기억에 특히 남는다”며 “칠레 군사독재 정권 아래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여정을 따라가며 묘사한 작품인데 당시 많은 청년들이 이 영화를 울면서 봤다”고 돌이켰다.
가브라스 감독은 자신이 대표를 맡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개최한 흡혈귀 영화 특별전에 박 감독의 ‘박쥐’(2009)를 상영작 중 하나로 선정했다는 소식도 알렸다. 그는 “‘박쥐’는 물론이고 ‘올드보이’(2003)와 ‘스토커’(2013), ‘아가씨’(2016),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까지,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세계관과 감수성, 독창성을 표현할 수 있는지 놀랍다”고 했다. 대선배의 극찬에 박 감독은 “이전 영화의 감성이 다음 영화의 변화를 이끄는 것 같다”며 겸손하게 화답했다.
가브라스 감독은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2015년 그리스 금융 위기 사태를 그린 신작 ‘어른의 부재’를 선보인다. 가브라스 감독은 “세상 모든 현상의 이면엔 정치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며 “지금은 정치인보다 은행 같은 경제 권력이 민주주의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산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박 감독은 “IMF 구제금융 위기를 겪은 우리나라 관객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서 “날카로운 비판 정신과 활화산 같은 에너지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박 감독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가브라스 감독은 “나도 젊은 감독에게 자극받고 배우는데 박 감독도 그중 한 명”이라면서 한국 영화의 독창성을 거듭 칭찬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난 10여년간 시네마테크를 운영하면서 프랑스에 한국 영화를 많이 소개했는데 여성 감독은 3명밖에 없다”며 “앞으로 더 많은 여성 감독이 배출되길 희망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부산=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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