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온드라(25ㆍ체코), 아시마 시라이시(18ㆍ미국) 등 세계적인 클라이머들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온드라는 8세에 5.12c급(자연 암벽 난도, 숫자가 높고 알파벳이 a→d일수록 어려움) 루트를, 시라이시는 11세에 5.14c급 루트를 정복했다.
‘최연소 국가대표’ 서채현(16ㆍ신정여상 1년)도 그렇다. 2003년 11월 1일 생으로,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성인대회 출전 기준인 만 15세가 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국제대회를 휩쓸고 있다. 지난 6월 국가대표로 선발된 뒤, 2019 IFSC월드컵 2ㆍ3차 대회에 이어 지난달 30일 슬로베니아 크란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까지 세 대회 연속 금메달(여자부 리드)을 땄다. 1차 월드컵 은메달까지 합산해서 여자 리드 부문 IFSC 월드컵 랭킹 1위다. 서채현은 4일 본보 인터뷰에서 “운이 좋았다”라고 말했지만, 이 정도면 엄연히 ‘실력’임을 증명한 셈이다.
지난해 7월에는 배드걸스클럽(난도 5.14d)을 완등했다. 미국 콜로라도주 라이플마운틴파크에 있는 40m 높이의 자연 암장인데, 난도가 높아 남성 완등자도 8명에 불과하다. 2016년 여성 최초로 마고 헤이즈(21ㆍ미국)가 오른 이후 서채현이 여성 두 번째다. 최연소 완등(만 14세 8개월) 기록은 덤이다. 서채현은 “2017년에도 도전했는데, 홀드 2개를 남기고 추락해 많이 울었다”면서 “성공 후 주변 외국인 클라이머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박수를 쳤다”라며 웃었다.
아버지 서종국(46)씨와 어머니 전소영(46)씨가 모두 클라이머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외동딸을 집에 혼자 둘 수 없어서 서채현이 6살 때부터 같이 산행을 다녔다고 한다. 자연스레 ‘자연 암벽’과 친해진 이유다. 또, 부모가 운영하는 암장에서 놀다 보니, ‘실내 암벽’과도 친구가 됐다. 아버지를 따라 다녔던 빙벽 등반도 수준급이다. 엘리트 클라이머 중에도 실내 암벽엔 익숙하지만 자연 암벽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어머니 전씨는 “채현이는 천재라기보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은 성과”라고 말한다. 머리가 큰 편이어서 클라이밍에 최적화된 체형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단다. 하지만 방과 후 6~7시간씩 암장에서 씨름하면서 루트 파악에 금세 눈을 떴다. 또 “그냥 클라이밍이 좋아서 즐기고 있다”라는 ‘덕업일치’도 크게 작용했다. 서채현은 “컨디션이 안 좋아 잠시 쉰 적은 있지만”면서 “운동하기 싫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도 한몫 했다.
장점은 역시 지구력과 흔들리지 않는 멘탈이다. 서채현은 “월드컵 첫 경기 예선에선 엄청 긴장됐는데, 그 이후로는 하나도 안 떨렸다”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벽에 오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단점은 스피드다. 주종목 리드와 볼더링은 좋은 성적이 나오지만, 스피드 종목은 부족하다. 아직 어리다 보니, 근육이 완전히 발달하지 못했는데, 스피드는 근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올림픽(리드ㆍ볼더링ㆍ스피드를 합산한 콤바인이 정식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스피드를 보완해야 하는 이유다. 여기에 자유분방한 서채현에게 ‘정해진 루트를 빨리 오르라’고 강요하는 스피드는 따분한 종목일 수밖에 없다. 서채현은 “스피드는 정말 재미없는 노동”이라며 볼멘소리를 내면서도 “현재 10초 후반인데, 9초 초반까지 끌어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목표는 월드컵 랭킹 1위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5ㆍ6차 대회가 남았지만 지금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시즌 종합 우승이 가능하다. 내년엔 2020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해야 한다. 스포츠클라이밍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2024년 파리 올림픽에도 정식 종목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따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한 이유다.
내년 5월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서채현은 “(도쿄 올림픽에) 나가면 좋겠지만, 못 나가도 상관없다”면서 “올림픽 동안 숙제하러 가면 된다”라고 ‘쿨하게’ 말했다. 그가 말하는 ‘숙제’란 스페인 시우라나의 라 람블라(난도 5.15a)라는 자연암벽인데, 배드걸스클럽보다 난도가 한 단계 더 높다. “올해 2월에 도전해 봤는데, 완등을 못했거든요. 올림픽에 못 가면 라 람블라에 다시 도전하면 돼요. 최고 난도인 라 두라두라(스페인 올리아나ㆍ5.15c)에도 도전하고 싶고요. 사실 전 (정해진 코스를 오르는) 올림픽보다 자연 암벽이 더 좋아요”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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