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금지법 계기 정부타도로 시위 격화
람 “폭도들과 관계 끊으라” 강경 대응 천명
5일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6월 중국 정부의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에 반발해 시작된 반중(反中) 시위가 정부 타도를 목표로 한 반정부 시위로 급격히 수위를 끌어 올렸다. 4일 장외 집회에서 마스크와 가면 등의 착용을 금지하겠다는 홍콩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 방침은 잠잠했던 시민들까지 거리로 이끌었다. 여기에 전날 경찰의 실탄 사격으로 1일 고교생 청즈젠(曾志健)에 이어 또 다시 14세 소년이 다리를 심하게 다치자 시위 분위기는 더욱 격앙됐다. 심지어 “임시정부를 선포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터져 나왔다. 이제 홍콩의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날 오후가 되자 수많은 시민들이 도심 곳곳으로 모여들었다. 복면금지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수 시위 참가자가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쓰고 행진을 시작했다. 수만명이 거리로 나섰던 지난 주말보다 참가자 수는 크게 줄었다. 전날 폭력 시위로 도심 기능이 마비된 탓이 컸다. 이들은 ‘홍콩에 영광을’이란 글귀가 새겨진 노란색 피켓을 들고 ‘홍콩이여 저항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중국 공산당의 통치를 받는 정부는 홍콩인을 대변할 수 없다”면서 자유와 민주, 인권을 기반으로 하는 홍콩 임시정부 설립을 선언하기도 했다.
전날 홍콩 전역은 방화와 폭력으로 얼룩졌다. 지하철 역사들은 화염에 휩싸였고 은행 자동인출기(ATM)와 상점을 상대로 한 약탈과 파괴 행위가 속출하는 등 말 그대로 홍콩은 ‘죽음의 도시’였다. 경찰도 총탄과 방망이로 맞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 여파로 이날 모든 지하철 역사가 폐쇄됐고 은행, 관공서 및 상점가도 전부 문을 닫았다. 첵랍콕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특급노선을 포함해 하루 400만명을 실어 나르는 지하철 운행은 전면 중단됐다. AP통신은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래 무역과 국제금융의 허브가 가장 큰 위기에 빠졌다”고 우려했다.
무질서가 횡행하면서 생필품 사재기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식료품을 대거 구매한 67세 남성 은퇴자는 AP에 “시위대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원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자유가 없느냐”며 “젊은이들이 더 이상 후회할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콩 시민들의 분노는 한층 커졌지만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강대강’ 대응을 천명했다. 람 장관은 이날 5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극단적 폭력으로 홍콩의 공공 안전이 위협받아 복면금지법을 시행한 것”이라며 “정부는 단호히 폭력을 막고 (시민들도) 폭도들과 관계를 결연히 끊으라”고 강조했다. 전날 복면금지법 도입 발표 이후 폭력시위 양상이 두드러지자 강경 자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는 “어제 홍콩은 폭도들의 극단 행동으로 매우 어두운 밤을 보냈고 시민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홍콩 절반이 마비됐다”고도 했다. 존 리 공안장관 역시 “(복면금지법이 아니라) 이런 행위에 대한 지지가 폭력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비난을 일축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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