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vs 광화문 연이은 집회, 여야도 경쟁적 세 과시… 문희상 “국회 존재 이유 상실” 일갈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광장정치’의 세(勢) 대결이 극단적인 국론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앞 대규모 촛불문화제가 검찰개혁을 요구하며 ‘촛불 시민의 귀환’을 알리자, 개천절 광화문에서 자유한국당과 보수단체 주도로 열린 반정부·조국파면 촉구 집회가 보란 듯이 위력을 과시했다. 5일에는 서초동에서 2차 촛불집회가 열린다. 앞선 집회가 상대측 다음 집회를 경쟁적으로 자극시켜 집회 규모와 성격을 둘러싼 여야의 날 선 신경전이 치열하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심각해질 “제도정치의 실패”를 우려했다.
4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전날 열린 광화문 집회에 대해 “한국당은 (태풍 피해로 인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동원 집회에만 골몰하며 공당이길 포기했다”며 “제1야당의 인사들이 도를 넘는 막말을 남발하고, 국가 원수에게 ‘제정신’을 운운한 것은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도 “서초동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일어났지만, 한국당의 집회는 당의 총동원, 종교단체, 이질적 집단들이 함께 동원돼서 만든 군중 동원 집회”라며 “서초동 촛불은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절박함에서 일어났지만, 한국당 집회는 어떻게든 문재인 정권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개입된 집회”라고 했다.
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총괄대표(사랑제일교회 목사) 등을 내란선동 혐의로 4일 경찰에 고발했다. 김 의원은 “전 대표와 집회 주최 관계자들은 집회에 앞서 ‘청와대 함락과 문재인 대통령 체포를 목표로 순국대의 청와대 진격, 경찰 바리케이트 무력화’등을 사전에 논의하고 이를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해 내란을 선동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파상공세를 펴면서도, 비판이 커지는 ‘광장 정치’와 선을 긋는데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실제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앞 검찰개혁 촉구 대규모 촛불문화제 이후 당 일각에선 ‘긴급최고위원회의라도 열어 문화제의 의미를 평가하고, 당의 역할을 고민해야 하지 않냐’는 등의 ‘촛불지원’ 요구가 제시됐지만, “당은 한걸음 물러서는 것이 맞다”며 지도부가 반대했다.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는 “촛불은 촛불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가는 것이 맞다”고 당 차원 개입의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자격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의원들을 단속하는 기류도 눈에 띈다. 당 관계자는 “집회 참석자들에게 심정적으로 동의하더라도 ‘조국 지키기’ 행보로 비칠 수 있다는 부담 탓에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검찰개혁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발언을 자제하라는 취지의 과열 단속이 오간다”고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이날 “숫자놀음에 빠진 정치 지도자가 국민을 거리로 내몬다”고 여야 모두를 향해 일갈한 것도 이 같은 자제론에 한몫 했다. 문 의장은 이날 “갈등과 대립을 녹이는 용광로가 돼도 모자랄 국회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대의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정치실종을 초래해 스스로 존재이유를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정치가 실종됐다”고 입을 모았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행정학부 교수는 “대의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더 큰 문제는 검찰 수사의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런 극단 대치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또 “검찰개혁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검찰의 판단에 모든 것이 달리게 된 이중적 상황이라, 우리 사회가 정치 사법화의 극단적 모형을 확인할 수 밖에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끌고 온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여야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고언도 이어졌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장관 한 사람의 인사 문제가 (주최측 추산) 기백만 집회를 야기한 상황 자체는 정치사에서 두고두고 거론될 법한 정치실패의 사례”라며 “국정을 이렇게 소모시키고 블랙홀을 만들고 있는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따져볼 시점”이라고 했다.
‘내란 선동’이 언급된 데 대한 논란도 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과거에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정부를 비판할 때 그 표현과 방법이 거칠었다 하더라도 이를 국가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것이 불합리하듯, 광화문 집회의 행위를 내란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느냐”며 “내란선동의 대상은 국가 그 자체이지, 정부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극단적 일부의 지나침은 때로 지혜롭게 방관하고, 슬기롭게 무시할 줄도 알아야 정치가 법에 의한 지배를 받지 않는다”며 “한 사회의 에너지가 이처럼 양극적으로 광장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민주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당 관계자는 “(고발은) 전광훈 대표 등이 유포한 메시지가 단순히 과도한 수준이 아니라 특수임무수행을 위한 문재인 체포조, 청와대 장악, 병력 집결 등을 언급하고 있기에 취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