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정씨 측, 공범관계 조범동 공소 사실 파악할수록 방어 수월”

본격 수사 착수 한 달여 만에 검찰에 나온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조사 7시간만에 조사를 중단하고 귀가하면서 조서에 날인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이튿날 소환마저 거부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수사 지연 전략일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4일 검찰에 따르면 정 교수는 전날 오전 9시 검찰에 출석해 “건강이 좋지 않다”며 오후 4시쯤 조사 중단을 요구했다. 결국 검찰은 다음날 조서 열람과 추가 조사를 하기로 한 뒤 오후 5시쯤 정 교수를 귀가시켰다. 하지만 정 교수 측은 두 번째 조사를 받기로 한 이날도 검찰에 “건강상 문제로 출석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당초 검찰은 사모펀드 관련 의혹의 공범으로 지목된 조국 장관의 5촌 조카인 조범동씨의 기소를 염두에 두고 정 교수 소환조사 일정을 짰다. 조씨 기소로 공소사실이나 관련 증거가 외부에 알려질 경우 정 교수에 대한 수사 보안을 지키는 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은 공개 소환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바꾸면서까지 조씨의 구속 기간 만료일인 3일 정 교수를 불렀다.
그러나 정 교수가 조서에 서명도 하지 않은 채 귀가하고 약속했던 이날에도 출석하지 않으면서 수사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피의자 조사에서 서명 날인은 조서에 기록된 문답에 서로가 동의한다고 매듭짓는 마지막 절차인데, 정 교수는 서명 날인도 없이 조사를 중단했다. 엄밀히 말하면 검찰은 아직 정 교수에 대해 ‘1회 조사’도 마무리하지 못한 셈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서명이 되지 않은 조서는 언제든 변경할 수도 있다”면서 “향후 열람을 하면서 자신에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진술은 취소할 수 있다”고 수사 차질을 우려했다.
그렇다고 정 교수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소환일정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 교수가 병원에 입원하고 자택 압수수색 때도 쓰러지는 등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의 변호인단은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정 교수는 영국 유학 중이던 2004년 강도를 피하다가 추락해 두개골 골절상을 입었고 6세 때는 한쪽 눈을 실명했다”며 “이러한 뇌기능과 시신경 장애의 문제로 인해 조사 때 검사와 눈을 마주치기 힘들고 변호인과도 장시간 대화를 나누기 힘든 상태”라고 밝혔다. 최근 정 교수를 목격했던 한 법조계 관계자 역시 “정 교수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정 교수 측이 건강 상태를 이용해 수사 지연 전략을 세웠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전날 기소된 조씨와 공범관계에 있는 정 교수가 조씨 공소사실을 파악할수록 검찰 조사에서 유리한 방어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아무리 조씨의 공소장에서 공모관계에 대한 내용을 뺐다고 하더라도 공소사실 자체를 아는 것만으로 정 교수 측 대응은 수월해진다”며 “반면 검찰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사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가 자신의 건강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조만간 마무리될 것으로 보였던 조 장관 일가 펀드 의혹, 증거인멸 의혹 관련 수사는 당분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정 교수가 이날 불출석 사실을 알리면서 검찰에 별도의 출석 날짜를 요청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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