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과의 비핵화 실무 협상에 나선 미국이 최대한 말을 아끼며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로 미국 내 대북 여론이 악화하는 점을 고려해 일단 북한과의 협상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이번에 탄도미사일과 관련해 도를 넘었는가. 지나친가’라는 질문을 받고 즉답을 피한 채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대화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곧 그들과 이야기해볼 것”이라며 “지켜보자”고 거듭 말했다. 북한의 SLBM 발사에 대한 직접적 대응은 자제하면서 협상 판을 깨지 않고 실무 협상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때마다 “다른 나라도 다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등 그 의미를 축소해왔던 것과 달리 북한이 대화를 원해서 들어보겠다는 취지의 언급만 짧게 내놨다. 북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언급해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관계가 좋다’거나 ‘북한에 잠재력이 있다’는 등의 대북 유화적 메시지도 없었다.
이는 실무 협상이 어렵게 마련된 만큼 일단 북한이 어떤 비핵화 조치를 내놓은 지 확인한 뒤 다음 행동을 취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단거리 미사일과 달리 SLBM이 미국을 위협하는 전략무기인 만큼 북한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에서는 SLBM 발사 후 북미 협상 성과가 지지부진한 점을 비판하면서 최대 압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 같은 신중한 태도는 미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국무부는 이날 실무 협상을 맡은 북한 측 대표단이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한 상황에서도 협상 일정과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의 스웨덴행 여부 등에 대한 질의에 “공유할 사항이 없다”는 답변만 내놨다. 북한 측 협상대표인 김명길 순회대사가 베이징(北京) 공항에서 “미국에서 새로운 신호가 있어 큰 기대와 낙관을 가지고 간다”며 낙관론을 편 것과는 대조적이다. 북한이 한편에선 미사일, 다른 한편에선 협상 낙관론의 ‘화전양면’(和戰兩面, 앞에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뒤에서는 전쟁을 준비하는 전술)식 공세로 미국의 양보 조치를 재촉하는 상황에서 협상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4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단계적 조치가 많아질수록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커진다”고 내다보면서 “북한은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전보다 약해졌다고 생각하면서 그를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 전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국면이 북미 합의를 오히려 촉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의 SLBM 발사에 대해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다가 다음 주로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말에 열리는 북미 실무 협상을 지켜본 뒤 회의를 열려는 의중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AFP 통신은 익명의 외교관을 인용해 미국이 공식 회의를 원치 않아 유럽 국가들이 비공개 회의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미국으로선 북한이 협상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는 협상에 집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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