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불량채권 발생이 우려되는 매입임대주택 거주 홀몸 노인들에게 LH에 유산 처분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권유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국정감사에선 “반인륜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은 4일 LH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LH가 매입 임대주택에서 무연고 사망자가 나왔을 때 불량채권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니 홀몸 어르신들을 상대로 미리 유언장을 받고 있다”며 “이는 사람 아닌 행정 편의가 먼저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유언장엔 ‘본인 사망 후 1개월 내 연고자가 유체동산을 처분 또는 수령하지 않을 경우 LH가 임의처분 한다’는 내용과 함께 유언 집행자로 LH(소속 직원 포함)를 지정하는 내용을 담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주 노인이 임대료 체납 등으로 임대보증금을 넘는 채무를 LH에 남기고 사망할 경우에 대비해 유산 처분권을 확보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현행법상 가족이나 상속인이 없는 무연고자가 사망하게 되면, 해당 재산은 법원을 통해 공탁을 하고 일정 기간 지나면 국고로 귀속하게 돼있다. LH는 국고귀속 후에 행정절차를 통해 채권 회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LH는 이러한 행정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지난해 ‘초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임대주택 유증(유언증여)서비스 등 시행방안’을 마련해 임대주택 거주 무연고 고령자에게 유언장을 받아왔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특히 독거노인에게 말벗, 민원 청취 등 편의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LH가 장애인 가운데 채용하는 ‘LH 홀몸어르신 살피미’가 유언장 작성 권유 역할을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LH는 지난해 7건, 올해 8건 등 총 15건의 유언장을 받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은 “지난 5년간 LH 임대주택에서 고독사한 고령자는 167명으로 이중 무연고자는 단 2명에 불과했고, 이로 인해 실제로 발생한 불량채권이나 행정비용은 없었다”며 “불량채권 회수 등은 행정절차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주거복지를 책임지는 공기업에서 행정 편의를 위해 유언장을 받고 다닌다는 것은 반인륜 정책”이라며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변창흠 LH 사장은 “당초 ‘홀몸 어르신 살피미 사업’ 취지는 장애인을 고용해 어르신들에게 말벗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취지가 잘못된 것 같다”며 “해당 사항을 확인해 개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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