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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자본주의ㆍ민주주의 ‘리셋’을 위한 매력적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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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자본주의ㆍ민주주의 ‘리셋’을 위한 매력적 제안

입력
2019.10.03 15:26
수정
2019.10.03 20:1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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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는 아름다운 언덕들이 쪽빛 바다와 어울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관광도시다. 그러나 이 곳에는 극단의 두 세계가 존재한다. 언덕 위에는 기본적 위생과 교통 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은 도시 빈민촌이 난립해 있고, 그 아래엔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레블론 마을이 있다. 브라질의 경제는 불평등하고, 정치는 부패했다. 신간 ‘래디컬 마켓’의 두 저자는 리우가 우리의 미래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2008년 빈민가 가옥에 경찰과 마약 밀매업자의 충돌로 희생된 여성들의 대형 얼굴 사진을 걸어둔 모습. 리우=연합뉴스
2016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는 아름다운 언덕들이 쪽빛 바다와 어울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관광도시다. 그러나 이 곳에는 극단의 두 세계가 존재한다. 언덕 위에는 기본적 위생과 교통 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은 도시 빈민촌이 난립해 있고, 그 아래엔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레블론 마을이 있다. 브라질의 경제는 불평등하고, 정치는 부패했다. 신간 ‘래디컬 마켓’의 두 저자는 리우가 우리의 미래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2008년 빈민가 가옥에 경찰과 마약 밀매업자의 충돌로 희생된 여성들의 대형 얼굴 사진을 걸어둔 모습. 리우=연합뉴스

개혁은 과연 개혁적인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나. 전 세계는 불평등과 경기침체, 포퓰리즘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우파와 좌파가 내놓은 처방은 식상할뿐더러 유효하지도 않다. 감세와 규제 완화, 민영화를 절대선으로 신봉하는 우파나, 부자 증세와 재분배만 부르짖는 좌파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무능하다. 출구 없는 위기를 해결할 새로운 대안은 정녕 없는 것일까.

‘래디컬 마켓’은 이 질문에 도발적인 답을 내놓는 책이다. 공동 저자인 세계적 법학자 에릭 포즈너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와 마이크로소프트 수석연구원 글렌 웨일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뜯어 고쳐 시장과 정치, 사회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하자고 제안한다.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 개념부터 새로 설정하는 작업이다. 이들이 꿈꾸는 혁명 대안은 ‘래디컬 마켓’이다. 출간 당시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직접 서평을 쓸 만큼 강력 추천해 블록체인 업계에서 일찍이 화제가 된 책이다.

두 저자는 먼저 자본주의 토대가 된 재산권부터 흔든다. 사유재산권은 필연적으로 부의 집중과 시장 지배력을 낳고,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독점으로 본다. 우파는 불평등은 경제 성장과 활력에 따르는 대가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이미 저성장의 길에 진입한 지 오래다. 불평등이 확대되면서 동시에 경제도 저성장하는 ‘스태그인이퀄리티(stagnequality)’ 상태다. 이는 좌파의 뜻대로 정부가 개입해도 해결은 요원하다.

이들이 진영을 뛰어넘어 제시한 해법은 ‘경매’다. 경매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경쟁에 기반한 자유 교환과 자원 배분이라는 근본 원리가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적 합의다. 경매 시장에서는 영원 불변하는 사적 소유나 재산권 행사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경매를 토대로 한 공동 소유는 배분 효율성은 높이지만, 투자 효율성은 떨어트린다는 게 문제다.

‘공동소유 자기평가제’는 그 대안이다. 사회와 개인 소유자가 공동으로 재산권을 갖는 것으로, 소유자는 일종의 임차인이 된다. 임차 계약은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용자가 나타나면 종결되며 새로운 사용자가 계약을 이어 받는데, 개인들이 본인 재산에 스스로 값을 매겨 공개하고 그 자산가치에 연동해 세금을 내는 제도다. 이렇게 되면 투자 효율성을 거의 해치지 않으면서도, 배분 효율성은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책은 주장한다. 거래가 성사돼 발생한 세금은 공공 재원으로 쓰여 모든 시민에게 공평하게 배분되는 구조다.

민주주의도 리셋의 대상이다. 이들은 다수결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다수결은 소수 집단의 권리를 침해하고, 자질이 부족한 후보자를 선출하거나 심지어 독재를 낳는 횡포를 부린다. 진영 논리에 갇힌 극단적 정치로 포퓰리즘과 동시에 정치 혐오를 불러오기도 한다.

두 저자가 내놓은 대안은 1인 1투표를 대체할 제곱투표다. 제곱투표에선 매년 모든 시민에게 ‘보이스 크레디트’가 주어지는데, 그해 투표에 사용하거나 다음해로 이월해 쓸 수 있다. 단, 표로 전환하려면 보이스 크레디트를 제곱만큼 사용해야 한다. 1표는 1개, 2표는 4개, 3표는 9개의 보이스 크레디트가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유권자들은 표를 저축해 놨다가 자신이 관심을 갖고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따라 1표가 아니라 10표, 20표, 30표도 행사할 수 있다. 단순히 찬반을 밝히는 걸 넘어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는지 선호도를 가중치를 담은 표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수 집단도 자신의 의사를 강력하게 표출할 수 있어 여론이 한쪽으로 쏠리는 걸 견제하고 사회 구성원 전체 의견을 다양하게 담아낼 수 있다.

이 밖에도 책은 개인이나 커뮤니티가 이민자를 직접 후원하는 비자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커뮤니티 수요에 맞는 이민자 기반 노동시장을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다. 또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던 기관투자자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산업 내 분산 투자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자고 말한다. 디지털 경제에서 부상한 데이터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는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의 주장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시장에 대한 근본 개념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좌파와 우파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근본적이면서도 급진적이다. 두 저자는 이 정책들을 당장 전면적으로 시행하지는 못하더라도 국ㆍ공유 재산이나 경제특구 시범 사업 등에서 소규모 단위로 실험을 해 보자고 제안한다. “가장 큰 위험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번영과 진보를 바란다면, 오래된 진실에 의문을 던지고,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고, 새로운 사상을 실험해야 한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는 두 저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볼만한 이유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래디컬 마켓

에릭 포즈너ㆍ글렌 웨일 지음, 박기영 옮김, 하상웅 감수

부키 발행ㆍ472쪽ㆍ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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