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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로 없는 홍콩 시위… 성난 시민들, 버티는 경찰, 부추기는 미국, 곤혹스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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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로 없는 홍콩 시위… 성난 시민들, 버티는 경찰, 부추기는 미국, 곤혹스런 중국

입력
2019.10.03 15:52
수정
2019.10.03 19:0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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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정부, 4일 긴급법 발동해 ‘마스크 착용 금지’ 가능성 

홍콩 시민들이 2일 샤틴 지역 쇼핑몰 바닥에 자유를 촉구하는 구호를 새겨 놓고 전날 고교생을 향해 실탄을 발사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시민들이 2일 샤틴 지역 쇼핑몰 바닥에 자유를 촉구하는 구호를 새겨 놓고 전날 고교생을 향해 실탄을 발사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고교생을 향한 경찰의 실탄 총격 이후 홍콩 반정부 시위가 퇴로 없는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성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경찰은 시위대에 폭력행위 책임을 떠넘기며 강경 진압으로 맞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침묵하는 가운데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을 손에 쥔 미 정치권이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며 중국을 겨냥하자, 중국은 정당방위라고 반박하며 국제사회의 개입을 차단하려 총력을 기울였다.

시위대는 2일부터 3일 새벽까지 홍콩 곳곳에서 중국 관련 시설물을 집중 공격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18살 창츠킨(曾志健) 군이 중국 국경절인 1일 시위 도중 경찰의 총에 맞아 중태에 빠지자 ‘피의 빚’을 되갚겠다며 대대적 반격을 예고한 시위대는 중국은행에 설치된 현금지급기(ATM)를 때려 부수고 중국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 대리점의 기물을 파손했다. 또 홍콩 정부에 항의해 지하철역 교통카드 충전기를 망가뜨리고 경찰청 청사에 화염병을 던지는 등 전방위로 공권력에 맞섰다.

더구나 경찰 조사결과 1일 시위에서 당초 경고사격으로 알려진 나머지 5발 중 3발이 시위대를 겨냥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불안과 적개심은 극에 달하고 있다. 실탄에 맞아 추가 희생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경찰이 창 군을 향해 실탄을 쏠 당시에도 허공을 향한 경고사격이나 먼저 고무탄을 발사하는 과정이 전혀 없었다”며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또 일부 시민은 ‘우리 아이들을 쏘지 마세요(Don’t shoot our kids)’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쏜 고무탄에 눈을 다쳐 시력을 잃는 피해자도 추가로 발생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시위 현장에서 오른쪽 눈을 고무탄에 맞은 인도네시아 여기자 측 대리인은 “영구 실명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전했다. 지난 8월 11일 홍콩 여성이 오른쪽 눈을 실명한 이후 두 번째다.

하지만 홍콩 경찰 측은 “시위대에 고립돼 얻어맞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급박한 상황에서 정당하게 대응한 것”이라며 “당신이 해당 경찰관이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홍콩 공중의사협회는 “당시 경찰관은 오른팔을 몽둥이에 맞아 다친 수준”이라고 재반박하며 양측은 책임 공방을 벌였다.

경찰에 따르면 1일 하루 동안 사용된 시위 진압장비는 최루탄 1,400개, 고무탄 900개, 빈백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 190개에 달한다. 시위가 본격화된 6월 9일부터 9월 20일까지 104일간 최루탄 3,100개, 고무탄 590개, 빈백건 80개가 소모된 것과 비교하면 1일 시위가 얼마나 과격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홍콩 경찰대원협회와 친중 성향 입법회(우리의 국회) 의원들은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통행금지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 선포를 촉구했다.

이에 홍콩 정부가 4일 긴급법을 발령해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3일 소식통을 인용,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4일 특별회의를 열어 긴급법 발동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긴급법은 1922년 제정돼 영국 총독이 발령하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에는 정부수반인 행정장관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시위대 체포, 언론 검열, 방송사 폐쇄 등 계엄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통제권을 갖는다. 실제 발령하면 1967년 노동자 파업 사태 이후 52년 만으로, 가뜩이나 과격해진 홍콩 사태가 더 큰 격랑에 휩쓸릴 수도 있다.

시위 양상이 실탄 피해자가 발생할 지경에 이르자 미 정치권도 적극 개입 의사를 내비쳤다.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윗을 통해 “자유와 자치를 쟁취하려는 용감한 홍콩 시민들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면서 “폭압과 압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1일(현지시간) 중국 국경절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홍콩 사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과 차별화된 행보다. 앞서 공화당 의원 21명도 홍콩 시위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미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의 잇단 공세에 중국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국경절 연설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를 콕 집어 언급하며 홍콩 시위에 경고장을 던진 터라 강경 대응으로 맞서야 하지만, 다음 주 미국과 무역협상을 앞두고 있어 섣불리 무력을 동원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이에 홍콩 주재 중국 외교부 사무소는 “2017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는 총기 사고로 1,00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라며 “폭도에 맞서 경찰은 안전규정을 지키고 있다”고 강변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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