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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노포기행]”50년 기술로 뽑아 해풍으로 말린 국수 맛 보이소”

입력
2019.10.05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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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포항 구룡포 제일국수공장 

50년간 자연건조만 고집한 경북 포항 구룡포읍 제일국수공장의 이순화(80)씨가 구룡포읍 구평리에 지은 두 번째 공장에서 해풍에 말린 국수를 실내서 숙성시키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50년간 자연건조만 고집한 경북 포항 구룡포읍 제일국수공장의 이순화(80)씨가 구룡포읍 구평리에 지은 두 번째 공장에서 해풍에 말린 국수를 실내서 숙성시키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 구룡포에서 50년간 국수공장을 운영해 온 이순화(80)씨가 가게를 처음 열 때 구입한 추저울로 국수 무게를 재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 구룡포에서 50년간 국수공장을 운영해 온 이순화(80)씨가 가게를 처음 열 때 구입한 추저울로 국수 무게를 재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내캉 같이 늙었니더.”

인생의 또 다른 동반자로 표현했다. 반세기를 함께 보냈으니 무리는 아닌 듯했다. 보기엔 낡고 오래됐지만 50년 넘게 희로애락을 함께한 사이였다. 지난달 29일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시장 내 제일국수공장에서 만난 이순화(80)씨에게 가게 한편에 자리한 제면기와의 인연을 묻자, 돌아온 답변은 그랬다.

이 공장의 국수에 대한 명성은 전국에서도 자자하다. 특히 실내 열풍 건조가 아닌 자연 건조 방식은 제일국수공장의 전매특허다. 구룡포 특산품인 과메기를 말리는 그 바닷바람에 건조시켜 나온 작품으로 잘 알려진 ‘해풍국수’가 바로 이곳 태생이다.

국수를 뽑는 과정도 남다르다. 반죽 후 롤러로 밀고, 자연 건조와 반건조, 숙성을 거치는 전통 방식만 고집한다. 재료는 물과 밀가루, 소금이 전부다. 이씨는 “밀가루에 소금, 물만 넣어 반죽하고 나머지는 햇볕과 바닷바람에 맡긴다”며 “해풍에도 염분이 있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소금 농도를 조절한다”고 귀띔했다.

제일국수공장엔 세월의 무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물건도 적지 않다. 국수의 무게를 재는 추저울과 긴 목판을 파서 만든 가게 간판 역시 1969년 처음 국수공장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이씨 곁을 지키고 있다.

그는 가게 입구에 놓인 책상을 가리키며 “너무 오래 쓰다 보니 상판이 아래로 처져 어쩔 수 없이 한 번 갈았다”며 “무엇이든 항상 깨끗하게 쓰고 크게 고장 나지 않으면 버리지 않고 쓴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시장 안에 위치한 50년 역사의 제일국수공장. 행정기관에서 제작한 간판에는 1971년 시작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공장 문을 연 해는 1969년이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시장 안에 위치한 50년 역사의 제일국수공장. 행정기관에서 제작한 간판에는 1971년 시작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공장 문을 연 해는 1969년이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시장 안에 위치한 50년 역사의 제일국수공장의 옛 모습. 1969년 개업 당시 구룡포우체국장이 손수 목판에 새겨 선물한 간판이 걸려 있다. 제일국수공장 제공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시장 안에 위치한 50년 역사의 제일국수공장의 옛 모습. 1969년 개업 당시 구룡포우체국장이 손수 목판에 새겨 선물한 간판이 걸려 있다. 제일국수공장 제공

 ◇북적거리는 이웃 가게 부러워 시작한 국수공장 

이씨와 국수의 인연을 알기 위해선 1960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씨는 구룡포항에서 남쪽으로 약 20㎞ 거리의 경북 경주시 감포읍 출신이다. 이씨는 스물 넷에 포항 구룡포로 시집을 왔다. 술과 사람 좋아하는 남편을 만난 죄로 집안일에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다.

생계 또한 그의 몫으로 따라왔다. 어린 자식들과 더불어 구룡포시장에 옹기가게를 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수공장과의 만남은 이 옹기가게를 개점한 구룡포시장에서 시작됐다. 먹을 게 별로 없던 시절 탓에, 당시 이 시장에 자리한 7곳의 국수가게엔 항상 손님들로 북적였다. 업종 전환이 필요해 보였고 3년 넘게 해 왔던 옹기 장사도 접었다. 계산서엔 남편의 도움도 포함됐다. 옹기보단 국수공장을 하게 될 경우, 사람 좋아하기로 소문난 남편의 인맥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실제 개업과 함께 작은 도움도 받았다. 남편과 친분이 있는 구룡포우체국장으로부터 직접 ‘제일국수공장’이란 간판을 개업 선물로 얻었다. 이 간판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게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국수공장 운영이 쉽진 않았다. 반죽부터 면발을 뽑아 포장하는 일까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반죽, 롤러, 건조, 묶기 등을 포함해 끊임없이 손이 갔다. 전문 기술자가 필요했다. 개업 3년 동안 함께했던 기술자가 나가자, 일의 대부분은 남편보단 이씨에게 몰렸다. 네 명의 어린아이를 돌보고 집안일까지 하면서 무거운 밀가루 반죽을 쉼 없이 들어올려야만 했다. 국숫발을 걸었다가 다시 걷기를 되풀이하는 노동도 그에게 돌아왔다.

이씨는 “면을 뽑고 남은 반죽은 잘 보관해야, 다음 반죽과 섞어 쓸 수 있는데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이 늘 그냥 두고 나갔다”며 “무거운 대아를 들어 옮기는 것도 내가 다 했다”고 힘들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고통은 몸에 새겨졌다. 하루에 수십 번씩 허리를 굽혀 면을 밀고 무거운 고무 대야도 들어야 했다. 이씨의 허리는 ‘ㄱ’자로 휘었고, 손가락은 대나무 마디처럼 군데군데 튀어나오고 삐뚤어졌다.

50년간 매일 국수를 만들어 삐뚤어진 이순화(80)씨의 손. 날마다 무거운 밀가루 반죽 대아를 들었다 놨다 하고 국숫발을 걸었다가 다시 걷기를 되풀이했던 오랜 고생의 결과물이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50년간 매일 국수를 만들어 삐뚤어진 이순화(80)씨의 손. 날마다 무거운 밀가루 반죽 대아를 들었다 놨다 하고 국숫발을 걸었다가 다시 걷기를 되풀이했던 오랜 고생의 결과물이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라면에 밀려 하나둘 문 닫아도 끝까지 버텨 

그 와중에 남편도 떠났다. 술을 좋아하던 이씨의 남편은 결국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간경화와 위암으로 서둘러 세상을 등졌다. 남편의 빈자리는 두 딸과 두 아들이 채웠다. 이씨가 밀가루를 반죽해 롤러로 면을 뽑으면, 아들들은 국숫발을 대나무에 끼워 건조장에 내걸었다. 딸들은 햇볕에 말린 국수를 포장하는 일을 거들었다.

위기는 계속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라면과 빵 등 먹거리가 다양해지면서 국수 가게도 문을 닫기 시작한 것. 시장 내 8곳이나 됐던 국수 공장은 점차 사라졌고 급기야 제일국수공장만 남게 됐다. 하지만 이씨는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면발을 뽑았다. 그는 “시장 안에서 가장 늦게 국수 공장을 열었지만 나만 남았다”며 “팔리면 팔리는 대로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하자고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물론, 믿는 구석은 있었다. 이씨에겐 수십 년간 자연건조를 고집하면서 기계보다 더 정확하게 체득한 기술적인 노하우가 존재했다. 이씨는 날씨에 따라 소금 농도와 반죽에 들어갈 물의 양 및 국수 두께까지 조절이 가능했다. 소금물에 맨손을 담그는 것만으로 염도를 구분해 냈다. 면을 재단할 때 자를 대지 않고 손대중으로 툭툭 잘라도 원하는 길이가 나왔다. 한 움큼 잡아낸 국수는 대부분 추저울에서 600g으로 표시됐다. 이씨는 “덥거나 날이 궂을 때는 소금을 적게 넣고, 바람이 약하거나 추울 때는 소금을 많이 넣는다”며 “하늬바람이 불 때 만든 국수가 최고 맛있다”고 천기를 누설했다. 하늬바람은 맑은 날 서쪽에서 부는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이다. 결국, 시장 내 국수 공장들의 줄폐업 속에서도 제일국수공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수십 년 동안 고집해 온 이씨의 자연 건조에서 비롯된 셈이었다.

구룡포 시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제일국수공장은 현재 이씨의 아들 중 장남이자 네 명의 자녀 중 셋째인 하동대(50)씨가 운영 중이다. 대학 졸업과 함께 국내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한 하씨는 고생하시는 어머니 모습에 꿈을 포기한 것. 회사가 쉬는 주말마다 공장에 나와 일을 돕던 그는 마침내 2012년 사표를 내고 해풍국수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씨는 “누나 2명은 부부 교사로 공직 생활을 하고 남동생이 있지만 그래도 장남인 내가 가업을 이어야 한다 생각했다”며 “어머니가 이제 쉬셔도 되는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으셔서 걱정이다”고 애틋한 효심을 나타냈다.

50년간 자연건조만 고집한 경북 포항 구룡포읍 제일국수공장의 이순화(80)씨가 구룡포읍 구평리에 지은 두 번째 공장에서 해풍에 말리기 위해 야외 건조장에 길게 걸어 놓은 국수를 매만지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50년간 자연건조만 고집한 경북 포항 구룡포읍 제일국수공장의 이순화(80)씨가 구룡포읍 구평리에 지은 두 번째 공장에서 해풍에 말리기 위해 야외 건조장에 길게 걸어 놓은 국수를 매만지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최신 설비 공장 지었지만 건조는 해풍으로 

제일국수공장은 사세 확장에도 나섰다. 2년 전 구룡포읍 구평리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제2공장을 건설하면서다. 1억8,000만원에 최신 장비를 들여왔다. 하지만 까다로운 전통 건조 방식만큼은 여전히 바닷바람만 고수하고 있다. 맑은 날엔 2일을 꼬박, 흐린 날엔 3, 4일간 말린다. 야외 건조장에서 해풍으로 1차 건조시킨 다음 실내로 들여와 15시간 정도 숙성시키고, 다시 바깥에 널어 완전히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안과 밖을 쉴 새 없이 오가며 국숫발을 옮기다 보면 바닥에 떨어져 버리는 면발도 많다. 더구나 요즘처럼 태풍이 자주 오거나 장마와 같은 궂은 날씨가 계속되면 국수 생산은 더 어렵다..

바람과 볕에 맡기기 때문에 걷는 때도 시시각각 바뀐다. 잠깐 다른 일을 하다 때를 놓쳤다간 국수가 너무 말라 못쓴다. 말리는 과정에도 수십 번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고 했다. 이씨는 “이가 안 좋아 치과에도 가야 하고 안과에도 가야 하는데 일이 많아 병원 갈 시간이 없다”며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고 고집했다.

해풍국수를 얻기까지 온종일 매달려야 하지만 쏟아낸 정성은 맛으로 증명된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으로 말린 제일국수공장의 국수는 면을 삶아 보면 다른 제품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전분 찌꺼기가 잘 뜨지 않고, 삶은 면을 실온에 보관해도 잘 엉켜 붙지 않는다. 쉽게 퍼지지 않고 탱탱하면서 다 먹을 때까지 쫄깃한 맛이 살아 있다.

평가 역시 긍정적이다. 이 가게 단골인 정유정(41·포항 대잠동)씨는 “해풍에 말려서인지 면발만 먹어도 맛있고 방부제를 넣지 않아 소화도 잘된다”며 “딸아이도 이곳 국수만 찾아 구룡포에 오면 꼭 가게에 들러 사 간다”고 호평했다.

제일국수공장은 소면, 중면, 칼국수 세 가지를 생산한다. 해풍국수 맛을 바로 보고 싶으면 공장 앞 골목에 자리한 ‘할매국수’ 등 인근 국숫집을 찾으면 된다. 제일국수공장 면으로 국수를 말아내는 가게들도 주말에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먹을 정도로 인기다.

경북 포항 구룡포읍 구룡포시장 안에 자리한 제일국수공장 입구에 50년 전 개업 당시 구룡포우체국장이 손수 만들어 선물한 간판이 놓여 있다. 가게 입구 위쪽에 달려 있던 간판은 2년 전 시장 안에 아케이드가 설치되면서 입구 아래로 위치만 달라졌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 구룡포읍 구룡포시장 안에 자리한 제일국수공장 입구에 50년 전 개업 당시 구룡포우체국장이 손수 만들어 선물한 간판이 놓여 있다. 가게 입구 위쪽에 달려 있던 간판은 2년 전 시장 안에 아케이드가 설치되면서 입구 아래로 위치만 달라졌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이젠 여유를 부릴 법도 했지만 이씨의 생각은 다르다. 지난 50년간 늘 그랬던 것처럼 새벽 5시 눈을 떠 공장 안을 치우고 저녁 7시, 8시까지 일을 한다. 1년에 시장 내 친구들과 1~2회 여행을 가는 게 고작이다. 자식들의 근심도 쌓인다. 장남인 하씨는 “가끔 구평리 새 공장에 오시면 잠시도 쉬지 않고 빗자루를 들고 여기저기 쓸며 일을 하신다”며 “못 하도록 막는 건 포기했고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만 바랄 뿐이다”고 걱정했다.

제일국수공장에 대한 이씨의 애정은 오히려 더해 갔다. 이씨는 “누군가 많은 돈을 주고 공장을 통째로 사겠다고 해도 절대 팔지 않을 것”이라며 “하나둘 문 닫아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힘닿는 데까지 이 자리에 앉아 국수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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