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대 무너져 잠자던 70대 할머니 숨져
삼척ㆍ강릉ㆍ동해 침수ㆍ고립 잇따라
제18호 태풍 ‘미탁’이 몰고 온 비구름대와 동해상의 동풍이 합세해 만든 폭우로 강원 삼척과 강릉등 영동지역에 500㎜에 육박하는 폭우가 쏟아졌다. 주민들은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흔든 2002년 태풍 매미와 이듬해 루사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을 졸이며 밤을 지샜다.
3일 강원도 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 결과 전날부터 이날 지금까지 내린 비는 삼척 궁촌 417.0㎜를 비롯해 삼척 388.5㎜, 강릉 368.5㎜, 동해 367.6㎜ 등이다.
급기야 야속한 비는 70대 노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날 오전 1시 1분께 삼척시 오분동 인근에서 주택지 사면이 무너져 토사가 김모(77)씨의 집을 덮쳤다. 이 사고로 김씨의 집 벽이 무너지면서 안방에서 잠을 자던 김씨가 장롱에 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낮 12시 12분쯤에는 강릉시 옥계면 북동리 송어양식장 인근에서 40대 중국인 근로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자동기상관측장비(AWS) 측정결과 시간당 100㎜ ‘물폭탄’을 맞은 삼척에선 근덕면과 원덕읍, 정라동 주택 151채가 침수되거나 반파돼 이재민 267명이 발생했다. 또 도계읍 상덕리와 오분동 등지에서 정전이 발생, 삼척에서만 7,354가구가 불편을 겪었다.
삼척 노곡1길, 삼척로 주택에서 침수로 고립됐던 송모(86)씨 등 주민 3명은 저체온증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기록적인 장대비가 할퀴고 간 삼척 원덕읍 일대는 빗줄기가 줄어들자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바닷가 민박집과 낚시가게는 폭격을 맞을 듯 부서졌고, 노곡2리 마을엔 차량 서너 대가 뒤엉켜 있었다. 한 때 고립됐던 이 마을은 부러진 나뭇가지와 쓰레기로 아수라장이 됐다.
침수와 유실로 인한 도로 통제도 잇따랐다.
삼척시 근덕면 장호리 장호 터널과 원덕읍 월천리 7번 국도 2곳이 토사에 유실되거나 물에 잠겨 이 구간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 중이다.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와 노경리 등 416번 지방도 2곳도 침수되거나 유실됐다. 강릉시 교동과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에서도 토사가 쏟아져 내려 해가 뜰 무렵 임시복구가 완료됐다.
30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진 강릉에서도 경포호가 범람하면서 오전 한때 진안상가가 침수됐다. 상가에 남아 있던 일부 상인은 폭우에 고립됐다가 소방대원들의 도움으로 물바다를 가까스로 탈출했다. 강릉지역에선 오전 한때 시내 도로 대부분이 침수돼 시내버스 108개 노선 운행이 중단되는 등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시민들은 폭우로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파괴된 2002년 태풍 루사와 이듬해 매미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떨었다.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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