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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화재와 라면의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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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화재와 라면의 연결고리

입력
2019.10.0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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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일이다. 길가에 버려진 일회용 컵 안에서 나비가 빠져 나오기 위해 퍼덕이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뚜껑 가운데 구멍으로 나오면 될 것 같은데 나비는 찾지 못했다. 달콤한 냄새를 쫓아 들어갔다가 갇힌 모양이었다. 여행길에 한참을 걷다가 잠시 쉴 겸 앉은 내 눈에 띈 덕분에, 나비는 날 수 있었다.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은 사람을 원망했다.

그날 이후 생산하는데 5초, 사용하는데 5분, 분해되는데 500년이라는 플라스틱에 대해서 알게 됐고, 내가 쓰레기통에 넣은 그 컵과 빨대는 지금 어디에 닿아있을까 생각했다. 아니, 여태껏 내가 마구 사용한 플라스틱과 비닐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거북이 코에 꽂힌 빨대, 고래 뱃속에 가득한 비닐은 남이 아닌 내가 사용한 것이었다. 작은 나라의 산동네에서 희미하게 살고 있는 내가 저 멀리 대양에 사는 동물의 고통에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이 마구 사용한 플라스틱은 지금 어디에 닿아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이 마구 사용한 플라스틱은 지금 어디에 닿아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누구에게도 고통을 주지 않는 일상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불가능하다. 일회용 컵을 쓰지 않으려고 물병을 들고 다니면 뭐하나. 돌보는 길고양이들 밥을 주고 나면 캔과 비닐이 남는다. 나무를 살리겠다고 이면지를 쓰고, 책을 제작할 때 재생지를 쓰면 뭐하나. 인도네시아 밀림이 타고 있는데. 밀림은 제지산업을 위해서도 벌목되지만 팜유 농장을 만들기 위해서도 끝없이 화재를 겪는다. 팜유는 빵, 과자, 라면, 비누 등 수많은 생활용품에 이용되는 값싸고 유용한 식물성 기름이다. 연일 뉴스에 나오던 아마존의 화재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지금도 진화되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다. 아마존이 불타는 이유는 인간이 먹을 육식을 위해서 가축을 기를 땅과 가축에게 먹일 사료를 재배할 땅이 필요해서 의도적으로 일으킨 화재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밀림에 사는 오랑우탄의 비극과 내가 먹는 라면이, 아마존에서 죽은 새끼를 껴안은 어미 원숭이의 울부짖음과 수입고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이 연결고리는 인간이 사라져야 끝나려나.’ 무력감만 남는다.

올 봄 환경 영화제에서 <알바트로스>를 봤다. 사진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크리스 조던이 북태평양 미드웨이 섬의 알바트로스를 촬영한 영화였다. 플라스틱을 먹고 죽어가는 알바트로스에 관한 내용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자발적으로 무력감과 좌절감을 접하러 갈 것인가. 예상대로 영화를 보는 동안 숨을 몰아 쉬거나 숨이 멈춘 사이에 슬픔이 나를 통과해 가는 걸 여러 번 느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꽉 차 올랐다. 미드웨이 섬의 생명들은 아름다웠고, 경외심을 끌어올렸고,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온화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바로 그가 쓴 책이 있는지 찾았다. 고맙게도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인 ‘인디고서원’에서 영화와 감독과의 대화 등을 엮은 책 <크리스 조던>을 내놓았다.

해변에서 죽음을 맞이한 알바트로스. 게티이미지뱅크
해변에서 죽음을 맞이한 알바트로스. 게티이미지뱅크

작가 또한 처음 방문했을 때 “섬을 가득 채운 새들의 무덤에 무력감만 안고 떠나왔다”고 했다. 시기상 알바트로스가 이미 섬을 떠난 때여서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알바트로스 사체만 본 것이다. 섬을 다녀온 후 슬픔과 무력감에 빠진 그에게 친구는 다시 그곳으로 가보라고 조언했다. 아직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다시 찾은 섬에서 작가는 생기 넘치게 살아 숨 쉬는 알바트로스를 만나고, 그들을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무력감을 떨치는 법을 찾아낸다. 그것은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큰 문제들 앞에서 절망하지 말고 ‘슬픔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알려고 하고, 이 세계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절망을 넘어서라고 했다.

알바트로스가 죽어가는 모습을 여러 시간에 걸쳐 찍는 일이 꽤 어려웠다는 작가는 새가 겪는 고통의 시간에도,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함께 했다. 새의 깃털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았다. 작가는 죽어가는 새들에게 “넌 이제 유명한 영화배우가 될 거야. 너의 이야기를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줄 거야.”라고 말했다. 죽어가는 새의 고통은 줄여줄 수는 없지만 외면하지 않겠다는, 목격자가 되겠다는 작가의 약속이었다.

”더 이상 죽어가는 새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 게티이미지뱅크
”더 이상 죽어가는 새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 게티이미지뱅크

동물학대, 지나친 육식주의, 지독한 인간중심주의 사회에 매번 절망하지만 그럴 때면 크리스 조던이 알려준 대로 현실을 마주보고, 기꺼이 슬픔과 고통도 마주하고, 다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면서 절망을 넘어보기로 했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크리스 조던>, 인디고서원 엮음, 인디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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