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16)]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 탐험 2편
고통 없이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드데이르. 계단이 사라진 현재, 목마를 타지 않고선 실내 접근은 거의 불가하다. 문턱이 2m를 넘는다. @rvearound

‘카스르 알빈트(Qasr Al-Bint)’ 앞에서 지도를 펼쳤다. 쉼터인 베이슨 레스토랑을 거쳐 아드데이르(Ad-Deir) 수도원까지는 약 1.25km, ‘어려움(hard)’이라 기록되어 있다. 왕복을 해도 고작 2.5km인데 2시간30분~3시간이 걸린다고? 눈앞엔 맛보기처럼 그리 탐탁지 않은 계단이 보였다. 지금 시각 오후 3시, 방문자센터를 출발한 지 4시간째다. 안내 지도에는 메인 트레일이 ‘왕복’ 약 4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우린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었다.

바위산 사이 틈으로 난 계단길 초입. 공포의 전조처럼 모래가 신발을 빨아들이고, 붉은 암벽이 길을 조여온다. @rvearound
조금만 전진하면 뒤에 보이던 길이 바위산에 숨는다. @rve around
‘밀당’하듯 다른 계단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메인 트레일을 걸으며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40도에 육박하는 뙤약볕 아래를 걷는 길이다. @rvearound
라이언 트리클리니움의 문. 양 옆에 사자 조각상이 있고, 페디먼트(pediment, 맨 위 박공지붕) 아래 양끝으로 메두사의 머리가 보인다. 가운데 열쇠 모양의 문은 본래 사각 형태였으나 침식으로 변형된 결과다. @rvearound

아드데이르 트레일은 좀 더 붉은빛 사암에 휩싸인 채 여행자를 외진 길로 인도한다. 인적도 크게 줄었다. 길은 곧 계단, 무조건 오르막이다. 암벽의 결에 포위되고 동시에 수시로 뒤를 돌아보게 한다. 지나온 길은 이미 먼발치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계단은 좁다가도 넓게, 높다가도 낮게 변주되고 불규칙하다. 계단을 벗어난 곳에도 유적이 숨겨져 있다. 그중 ‘라이언 트리클리니움(Lion Triclinium)’을 정면에서 보려면 헛발질하기 쉬운 암벽을 타야 한다. 입구엔 나바테아인의 여신 알루자(Al Uzza)의 상징인 사자상이 새겨져 있다. 장례 연회가 벌어진 곳으로 추정된다. 한때 페트라는 오직 죽은 자들을 위해 지은 도시라는 설이 나돌았다. 이 길에도 접근하기 어려운 무덤이 이어진다.

후퇴할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자연이란 이름으로 암벽 스스로 조각된 극강의 멋 때문이다. @rvearound
트레일의 확실한 증표. 이 바위를 발견한 후 30~40분은 더 올라야 한다. 절망하지 말고 나아가길. 죽을 것 같지만 죽진 않는다. @rvearound
상점인지, 당나귀 쉼터인지 구분되지 않으나 확실한 건 당나귀도 덥다는 거다. 상점의 모양새는 이래도 남 부럽지 않은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rvearound

계단과 평지가 반복되면서 지그재그로 굽은 트레일이 이어졌다. 덥다. 그리고 뜨겁다. 그나마 메인 트레일에서 그늘이 되어주던 무덤조차 없다. 여행자의 열을 식히는 건 역시 베두인족 상점이다. 반 정착 생활을 하는 베두인족은 1812년 페트라가 스위스 탐험가에 발견되기 전까지 이곳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1985년 페트라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모두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일부 주민에게 동굴에서 거주하거나 장사할 권한이 주어졌다. 나머지는 근처 베두인 마을에 터를 닦기도 했다.

더는 견딜 수 없는 갈증이 왔을 때 멈췄다. 절벽 앞 상점이다. 온몸이 땀으로 콸콸 쏟아지는 폭포 상태였다. 대나무 지붕 아래서 얼얼한 물로 목을 축이고 나서야 남 걱정을 한다. 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매일 오른다는 말인가? 당나귀조차 다리를 후들거리는 트레일의 중간 지점이었다.

“오늘? 참 한가하지. 7월인 데다가 일요일이잖아. 최대 비수기야. 나도 이렇게 놀고 있지.”

21세기 페트라의 계절은 성수기와 비수기로 나뉜다. 일주일 중 일요일이 가장 한가하다. 성수기는 3~4월과 9~10월, 기후가 온화한 시기다. 이때는 아드데이르 트레일에만 하루 5,000~6,000명, 때론 7,000명 넘는 세계인이 발 도장을 찍는다. 대다수 단체 관광객이 메인 트레일만 기웃거리다가 돌아가는데도 이 정도다. 오늘 이 길의 베두인족은 탐방객이 물건을 사든 말든, 나귀를 타든 말든 호객 수위를 대폭 낮췄다. 완강하게 거부했던 택시(당나귀) 호객꾼을 되레 간절히 원하게 되는 길인데…. 탈진 직전의 우리에게 힘을 줄 요량인지 상점 주인이 한마디 거든다.

“여기부터 30분만 더 가면 돼.”

출발 직후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는 듯했을 때, 내려오는 다른 여행자에게서 들었던 것과 똑 같은 말이다.

아드데이르는 아파트 약 20층 높이다. 바로 아래 서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rvearound
아드데이르 앞에선 그 웅장함에 압도되지만, 사실 이 바위산에서 한 점에 불과하다. @rvearound

다시 걷는다. 아니 오른다. 여긴 아드데이르로 오르는 약 850여개 계단의 어디쯤일까. 이 길, 인간의 한계를 참 고되게 두들긴다. 그 수도원에 닿기까지 계단 하나하나가 수도의 길이다. ‘가야 한다, 버려야 한다, 목이 탄다, 다리가 부서지겠다’는 생각에 이어 급기야 세상과의 물아일체를 경험한다. ‘네가 거기 있으니, 나도 충분히 갈 수 있겠지’하는 요상한 허세였다.

좀 더 좁고 가파른 길을 오르다가 암벽이 뒷걸음질치는 시점에 왔다. 시야가 급작스레 개방된다. 거센 바람이 밀려오고, 앞선 여행자의 시선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해 있음을 간파했다. 아드데이르다. 준비할 새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알카즈네와 달리 클라이맥스를 감당할 시간을 주듯 트레일에서 우회해야 모습을 드러낸다. 단아한 웅장함이다. 섞일 수 없는 형용사의 조합이었다. 바위산에 꽁꽁 숨은 폭 47m, 높이 48.3m의 건축물은 알카즈네의 장식적인 요소를 빼고, 땅에서 기적처럼 치솟은 듯한 몸집이다. 본래 나바테아의 왕 라벨 2세의 무덤이었다가 비잔틴 시대에 예배 장소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유적이다. 찬찬히 보자니, 기운 해에 따라 장밋빛이 감돌았다.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은 페트라를 두고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붉은 도시(a rose-red city half as old as time)”

트레일의 끝엔 베두인족이 점거한 전망대가 두어 개 있다. @rvearound
현재 발굴된 페트라와는 전혀 다른, 검은 암벽이 사해 앞에 포진해 있다. @rvearound
김영하의 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가 떠올랐다. 염소 가족은 무사히 귀환했을까. @rvearound

트레일은 끝나지 않았다. 와디 아라바(Wadi Arabah)로 이어지는 낭떠러지가 나올 때까지 계속됐다. 현재 발굴된 페트라만 다 둘러보아도 일주일은 꼬박 걸린다는 관리자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세상의 끝에 섰다. 횡단하고 종단하는 거친 사암이 드라마틱하게 뻗어나가고, 멀리서 사해가 일렁거렸다. 심장이 뛴다. 진짜 사는 것 같다. 정복자의 기분도 묘하게 섞였다. 오롯이 나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게 된다. 바로 지금을 곱씹고 되뇌는 것, 그리고 깨어 있는 현재에 감사하는 것. 고대 도시 페트라가 우리에게 안기는 또 다른 보물이었다.

오후 6시30분 경, 페트라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러 명의 베두인족도 당나귀와 함께 귀가 중이다. 돌아오는 길의 페트라는 아직 끝나지 않은 오늘을 찬미하듯 마법의 빛깔로 배웅했다. 짙은 그림자로 다른 옷을 입는다. 왕가의 무덤 가까이엔 난감한 상황에 부닥친 염소 세 마리도 보였다.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할 절벽에서 아기 염소를 구하고자 어미 염소가 안절부절이다. 걸음이 무거워져 자주 쉬었다. 태양이 마지막으로 검붉은 기염을 토해내고 달이 떴다. 염소 가족은 무사히 집에 갔을까. 우리의 무거운 육신은 제대로 집을 찾았다. 마음은 여전히 또 다른 페트라에 있었다.

*다음 편은 페트라의 숨은 가지치기 트레일로 이어집니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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