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창단한 오딘극단과 크로닉 라이프, 3~5일 내한 공연
11개국 40여명의 단원이 하나의 작품을 꾸렸다. 배우들은 저마다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덴마크어, 스페인어, 영어, 루마니아어, 체첸어, 바스크어…. 자막도 해설도 없다. 굳이 관객을 이성적으로 이해시키려 들지 않는다. 대신 배우가 대사를 뱉으며 짓는 표정, 무대가 구현하는 이미지, 노랫소리가 극장을 채울 뿐이다. 출연 배우 이벤 니겔 라스무센(덴마크)은 말한다. “작품을 보는 데 너무 많은 생각은 필요 없어요. 몸으로, 마음으로, 이미지로 받아들여주길 바라요.”
세계 연극계에서 거장으로 손꼽히는 연출가 유제니오 바르바(83)가 오딘극단(1964년 창단)을 이끌고 내한했다. 3차 세계대전이 끝난 2031년의 유럽 이야기를 그린 ‘크로닉 라이프(chronic lifeㆍ만성적 삶)’를 공연하기 위해서다.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3~20일) 해외 초청작 중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 작품은 2011년 덴마크 홀스테브로에서 초연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선보여지며 호평을 받아 왔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현재는 덴마크에 터전을 꾸린 바르바 연출가는 ‘연극인류학’ 창시자다. 연극인류학은 시대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대 위 공연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들을 규정해내는 학문이다. 언어 외에 배우의 몸을 사용하거나 일상을 벗어난 표현으로 작품을 이어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크로닉 라이프’가 굳이 영어 등 공용어나 자막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연구 기조와 맞닿아 있다.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바르바 연출가는 “‘크로닉 라이프’ 역시 지난 55년 간 만들어 온 작품과 마찬가지로 전쟁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며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관객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다른 것을 보게 될 텐데, 그것이 오딘극단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크로닉 라이프’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맞물려있다. 3차 세계대전 후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 콜롬비아에서 유럽으로 떠나 온 16세 소년의 사연과 체첸 지역 출신의 유럽 난민으로 남편을 찾아 떠도는 여인의 고군분투기다. 단원들의 근거지인 홀스테브로의 군대 막사 안팎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지만, 최근 유럽 내 난민 문제, 유럽연합(EU)의 붕괴 같은 현안과도 깊게 연관돼 있다.
두 인물의 이야기는 순서대로 제시되지 않는다. 여러 목소리가 다른 언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다. “무대를 감싸듯 양면에 관객들이 앉게 되는데, 펼쳐지는 장면 중 어느 것을 볼진 전적으로 관객들의 선택이죠.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어떤 관객은 아주 행복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평하는 반면 굉장히 비극적이라는 이들도 있어요. 나라마다, 세대마다 반응이 다르고요.” 46년 간 오딘극단에 몸담고 있는 배우 줄리아 발리의 설명이다.
바르바 연출가는 내년을 끝으로 오딘극단이 속한 북유럽 극장연구소(Nordisk Teaterlaboratorium) 대표직을 떠난다. 그는 은퇴 전 관객과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매일 101가지 정도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 책임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면서 “하지만 매일 흘러가는 구름처럼 연구를 멈추지 않고 배우들을 만나고 새 퍼포먼스를 구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로닉 라이프’는 3~5일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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