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갈이 등장하는 가장 오랜 문헌은 기원전 5~3세기에 발간된 중국 고서 ‘이아(爾雅)’라고 한다. 경전에 쓰인 단어의 뜻과 유래를 모아놓은 일종의 사전인데, 그 안에 젓갈을 뜻하는 ‘지(鮨)’라는 글자가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젓갈을 먹기 시작한 건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학계에서는 패총 등을 근거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 젓갈을 저장했을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에도 신라 신문왕 때 폐백 음식으로 젓갈이 등장하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지만, 실제 젓갈을 먹은 건 훨씬 전일 것이다.
▦ 젓갈이 크게 발전한 것은 조선시대다. 종류만도 150종에 달했다고 한다. 생합(대합)젓, 잉어젓, 토화(미네굴)젓, 조기젓, 가자미젓, 밴댕이젓, 어리굴젓 등은 명나라 조공무역품에 들 정도로 풍미를 널리 인정받았다. 소금으로 발효시키는 젓갈을 통칭하는 ‘지염해’ 외에, 원료에 소금과 누룩, 술을 섞어 발효시키는 ‘어장육해’같은, 지금은 전승이 끊어진 방식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널리 소비되는 젓갈은 새우젓, 명란젓, 조개젓, 굴젓, 창난젓 등일 것이다.
▦ 그중에서도 새우젓과 함께 가장 서민적인 젓갈로 꼽히는 게 조개젓이다. 바지락, 대합, 모시조개 살을 쓰는데, 바지락살 조개젓이 가장 흔하다. 봄에 차지게 살이 오른 바지락살로 담근 전라도 곰소 조개젓이 유명하지만, 바지락 조개젓은 살강거리는 식감과 감칠맛이 워낙 좋아 산지에 관계없이 널리 사랑받았다. 발효되어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서산 어리굴젓도 좋지만, 다진 마늘과 파,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넣고 식초 한 방울 가미해 버무린 바지락 조개젓의 새콤 짭쪼롬한 감칠맛도 그에 못지않다.
▦ 요즘은 짠맛을 기피하는데다, 밥도 덜 먹어 젓갈에 대한 기호가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올 들어 전년 대비 6배 이상(1만4,214건ㆍ9월 현재) 급증해 유행한 A형 간염의 주요 원인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조개젓이라는 최근 식약처 발표까지 나와 이번 가을엔 젓갈에 손이 가기가 쉽지 않게 됐다. 유통 중인 조개젓의 3분의 1 가까이가 오염됐다니,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제조ㆍ유통 과정의 혁신이 절실해 보인다. 그래도 선선한 바람결에 조개젓 얘기가 나오니, 갓 지은 쌀밥에 차지게 버무린 바지락 조개젓 한 종지가 떠올라 군침이 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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