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 처제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해 청주 경찰에 체포된 이춘재(오른쪽)가 조사를 받고 있다. 중부매일제공ㆍ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가 9회에 걸친 접견조사 끝에 살인 행각을 자백하면서 경찰이 30여년 전 목격자의 기억을 복원한 ‘법최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법최면은 목격자나 피해자를 잠들기 직전의 최면 상태에 빠지게 해 뚜렷하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을 끌어내는 수사기법이다.

경기남부경찰청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는 이씨의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 법최면 전문가 2명을 수사에 투입했다. 법최면 조사 대상은 화성연쇄살인 7차(1988년 9월 7일) 사건 당시 버스에 탄 범인을 목격한 버스 안내양과 이씨에게 범죄를 당한 피해자다.

한 가지 기억을 복원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조사는 지방경찰청에 마련된 법최면 조사실에서 외부 자극이 차단된 채 진행됐다. 이 중 버스 안내양은 이씨의 사진을 보고 “당시 목격한 용의자 얼굴과 일치한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씨에게 직접 법최면을 걸지 않았지만 버스 안내양의 진술은 이씨의 입을 열게 한 결정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성연쇄살인 등 14건의 미제 살인사건을 실토한 이씨는 30여년 전 목격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기억해낼 거라는 점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지난주부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백했다”며 “진술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최면 조사가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일반에 널리 알려진 수사기법이 아니다 보니 “못 믿겠다”며 조사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경찰 내부에서도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반면 외국에서는 일찍부터 연구를 진행해 유용한 수사도구로 활용해왔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부터 목격자들이 최면 상태에서 더 상세하게 기억을 떠올린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나왔다. 국내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00년대 받아들여 몽타주 작성에 활용했고, 이후 경찰도 수사에 도입했다. 현재 경찰에 소속된 법최면 전문 조사관은 21명이다.

법최면은 폐쇄회로(CC)TV 영상 등 직접적 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용의자의 얼굴이나 행동, 발언 등을 복원해 수사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2015년 전북 정읍시에서 발생한 납치 사건 때는 조사관들이 술에 취한 데다 머리를 맞아 뇌가 손상된 피해자로부터 범인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미제사건 수사에도 활용된다. 2004년 2월 경기 포천시 배수로에서 발생한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의 경우 15년 만에 등장한 목격자가 지난 3월 경찰의 법최면 조사를 통해 범인 몽타주 작성에 기여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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