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소비자물가 0.4% 하락… 정부는 “일시적 현상” 분석
소비 부진 등 수요 약화 뚜렷… “장기불황 진입 가능성” 우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정부 공표치 기준으로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정부는 농산물 가격 하락, 고교 무상교육 시행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입장이지만, 경기 부진에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물가까지 현실화하면서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수출마저 10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하며 경기 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8월 -0.04% 이어 9월 -0.4%
1일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0.4% 하락해 1965년 통계 집계 이래 공표치(소수점 한자리까지)로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0.0%로 공식 기록된 8월 소비자물가가 실제로는 0.04%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물가는 2개월 연속 하락한 것이다. 올해 1~9월 소비자물가 상상률은 전년 동기 대비 0.4%에 그쳐 2012년의 역대 최저치(0.7%)를 갈아치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는 경기 부진 탓에 수요 측 물가 인상 압력이 낮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마이너스 물가는 주로 농산물ㆍ석유 가격 하락 등 공급 측 요인과 고교 무상교육 시행 등 정책적 요인에서 비롯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달 농축수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8.2% 떨어졌는데, 이는 지난해 농산물 가격이 폭염에 따른 흉작으로 급등(전년 동월 대비 8.6%)한 영향이 크다. 석유류 가격도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1년 전보다 5.6% 하락했다.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물가 하락은 지난달 물가 상승률을 각각 0.76%포인트와 0.26%포인트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복지정책 확대도 물가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부터 고교 3학년에 대한 무상교육이 시행되면서 고교납입금이 전년 동월보다 36.2%, 학교급식비가 57.8% 각각 떨어졌다. 병원검사료와 보육시설 이용료도 각각 10.3%, 4.3% 하락했다. 이러한 복지정책 확대는 9월 물가상승률을 0.26%포인트 낮췄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급 측 요인과 정책 효과가 지난달 물가상승률을 1.37%포인트 하락시키는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올랐는데 물가 내린 건 심각”
전문가들은 그러나 최근의 저물가 기조가 다분히 소비 부진 등 수요 약화에서 비롯하고 있어 우리 경제가 자칫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동절기 난방 수요, 이란 정정 불안 등에 따른 유가 인상 등 하반기 물가가 상승할 요인이 있긴 하지만 수요 부족에 의한 물가 하락 우려도 만만치 않다”며 “특히 최근 들어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수요 측 물가 상승 동력을 억제하고 있으며 이는 이는 공급 측 상승 요인을 상쇄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최저임금이 인상되며 공급 측 물가 상승 압력이 커졌는데도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점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의 총체적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가 3개 분기 연속 하락하고 있는 점을 심각하게 여기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GDP디플레이터는 소비뿐 아니라 투자, 수출입 등 GDP 구성항목과 관계된 모든 물가지표를 반영한 지수인데, 지난해 4분기(-0.1%) 마이너스에 진입한 뒤 올해 1분기 -0.5%, 2분기 -0.7% 등 하락폭을 키우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GDP 디플레이터가 3분기 연속 마이너스라는 건 불황 혹은 디플레이션의 전조”라며 “내년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경우 저물가와 맞물려 장기 불황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경기활력 저하에 수출입 동반 감소
우리 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447억1,000만달러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11.7%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10개월 연속 하락이다. 앞서 수출이 10개월 연속 하락한 시기는 2001년 3월∼2002년 3월(13개월), 2008년 11월∼2009년 10월(12개월), 2015년 1월∼2016년 7월(19개월) 등 세 차례뿐이다. 수출 둔화는 투자 위축→고용 감소→소비 부진으로 이어지며 가뜩이나 낮은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끌어내릴 수 있는 위험 요인이다.
수입 또한 지난달 387억4,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6% 감소했다. 수입 감소는 내수 위축과 연결돼 디플레이션 우려를 한층 높이는 대목이다. 수출과 수입의 차인 무역수지는 92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누적 흑자 규모는 288만200만달러에 그치고 있다. 1년 전 같은 기간(+544억2,400만달러)의 절반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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