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대규모 손실 사태를 빚고 있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원금손실 확률 0%’라는 취지의 마케팅 자료를 영업점에 제공하며 판매를 독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상품 출시 심의 과정에서 내부 반대를 묵살하고 심의 기록을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2개 은행이 판매한 DLF 상품의 불완전판매 비율을 20% 이상으로 추정하고 제재에 나설 방침이다.
◇자체 리스크 분석 없이 DLF 판매
1일 금융감독원은 영국ㆍ미국ㆍ독일 국채 금리 연계 DLF 상품에 대한 중간 검사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8월 말부터 이들 상품을 판매한 우리ㆍ하나은행과 상품을 설계한 증권ㆍ자산운용사들을 상대로 현장검사를 진행 중이다.
검사 결과 우리ㆍ하나은행은 자체적인 위험(리스크) 분석을 소홀히 한 채 DLF 상품 판매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은행들은 고위험 상품을 팔기에 앞서 내부통제기구인 상품위원회의 심의 및 승인을 얻는 절차를 두고 있는데, 이번 DLF 상품 중 위원회 심의를 거친 건수는 1% 미만에 불과했던 것이다. 심지어 우리은행에선 상품 출시에 부정적인 위원의 의견을 임의로 찬성으로 바꾸는 일까지 있었다.
이들 은행 본점은 과거 금리 추이만으로 손실 여부를 검증한 자산운용사의 테스트 결과에 기대 영업점에 ‘원금손실 확률이 없다’는 취지의 마케팅 자료를 전달했다. 이에 따라 현장 직원들은 “세계 최고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금리에 6개월만 투자하라”는 메시지를 앞세워 판촉에 나섰다. 투자자에게 독일 국채에 투자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는 행위였다. 은행들은 해외 국채 금리 하락으로 판매된 상품들의 손실 가능성이 커지는 와중에도 상품 구조만 조금씩 바꿔가며 판매를 이어갔다.
은행들은 직원 평가지표에 DLF 판매 실적을 반영하며 판매를 부추겼다. 2개 은행 소속 프라이빗뱅커(PB)에 책정된 비이자수익 분야의 핵심성과지표(KPI) 배점 비율은 20%로, 경쟁 은행들보다 2~7배 높았다. 금감원은 이들 은행이 매년 경영계획에 DLF 판매수수료 증대를 목표로 제시하고 본점 차원에서 매일 실적 달성 여부를 점검한 사실도 밝혀냈다.
◇전체의 20%가 불완전판매 의심
금감원은 이들 은행의 전체 DLF 판매분 중 20%가량을 불완전판매로 의심하고 있다. 아직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DLF 계좌(우리 2,006건, 하나 1,984건)에 대한 판매 서류를 전수조사해 △상품에 대한 설명의무 위반 △투자자 성향파악 의무 위반 △무자격자의 상품판매 △고령투자자 보호절차 위반 등의 여부를 파악한 결과다. 금감원 관계자는 “서류상 하자가 있는 사례만 추린 결과로, 판매 당시 사실관계가 추가로 확인되면 불완전판매 비율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우리ㆍ하나은행에 대한 추가 검사를 실시하는 한편 확인된 위법 사항에 대해 제재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또 검사가 끝나는 대로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피해자별 배상 비율이 결정하기로 했다. 지난달 11일까지 금감원 분쟁조정 신청 건수는 모두 148건으로 집계됐다. 원승연 부원장은 “금융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터라 이번 DLF 사태는 (금융사보다 약자인)국민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었던 일”이라며 “은행은 남은 검사 기간 동안 적극 협조하고 피해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2일 만기 독일 국채 DLF도 91% 손실
2일 만기를 맞는 우리은행의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은 원금의 91%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달 26일 만기분이 사실상 원금 전액 손실을 본 데 이어 90% 이상의 높은 손실율이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은 전수조사와 함께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우리은행 등에 따르면 2일 만기가 도래하는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 연계 DLF의 만기상환율은 8.3156%로 최종 확정됐다. 손실률이 91.7%라는 얘기로, 이 상품에 1억원을 투자했다면 831만원만 건지는 셈이다. 여기에는 금리 하락 폭과 무관하게 상품을 만기까지 유지할 때 보장해주는 쿠폰 금리 1.4%(연 4.2%, 만기 4개월)와 선취 운용수수료 반환분(0.1556%)이 포함돼 있다. 한편 하나은행의 2일 만기분 미국ㆍ영국 CMS 금리 연계 DLF는 55.56% 손실을 기록했다.
이날 금융정의연대와 DLFㆍDLS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는 “DLF가 사기성 상품이자 사기성 판매임이 금감원 중간발표로 확인됐다”며 “은행이 소비자를 기망한 사실을 확인한 만큼, 금감원은 즉시 우리ㆍ하나은행을 사기죄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에 대해선 상품 계약 일괄취소와 손실액 전액 배상을 요구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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