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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이 시작한 중국 열병식, 군사력 발전사 압축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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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이 시작한 중국 열병식, 군사력 발전사 압축 전시

입력
2019.10.01 17:38
수정
2019.10.0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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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군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이 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군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이 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국의 열병식은 1949년 신(新)중국의 수립 이래, 이 나라의 국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기능을 해 왔다. 특히 중국군의 각 시기별 최신형 장비들을 공개, 군사력의 발전사를 압축적으로 보여 줬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공산주의 혁명 완수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언한 1949년 10월 1일, 베이징(北京)의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린 개국 열병식이 그 시작이었다. 공산당 부대(홍군) 병력 1만여명이 ‘인민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였고, 전투기 17대가 광장 상공을 비행했다. 당시 등장한 군 장비들은 모두 국민당 군대와의 전투에서 획득한 것들이었다.

1950년에는 육ㆍ해ㆍ공군 병력이 무려 2만5,000명이나 동원됐다. 1,900필의 백마를 탄 기병부대가 광장을 지나가는 장관도 연출됐다. 20여일 후,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했다. 1953년 열병식의 경우,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이 사열에 참여했고, 중국군 총사령관인 주더(朱德)의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중국전쟁을 일컫는 중국식 표현) 승리’ 선언이 나오기도 했다. 건국 5주년인 1954년엔 북한 김일성 주석이 열병식을 참관했으며, 이듬해 행사에는 50여개 국의 외교 사절 2,000여명도 초청됐다.

1959년까지 매년 건국절마다 열렸던 열병식은 그 이후로 24년간 중단됐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복잡한 국내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다 1984년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이 “군민 단합에 필요하다”면서 부활시켰고, 이때부터는 간헐적으로 개최됐다. 건국 50주년을 맞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사열을 맡았던 1999년 열병식에선 중거리 핵미사일이 등장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집권 시기인 2009년(건국 60주년) 열병식은 참가 병력이 8,000명 정도로 줄었으나, 중국이 자체 개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東風)-31A’와 차세대 전투기 ‘젠(殲)-10’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5년 9월 3일에는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전승절) 70주년을 기념하는 중국 역사상 15번째 열병식이 열렸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도 참관했던 이 행사에선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둥펑-21D 핵전략무기가 공개됐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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