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기업으로 가장한 채 거짓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탈세를 노리는 다른 회사에 판매하는 이른바 ‘자료상’에 대해 국세청이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예전엔 고철업 등 영세업체 외피를 썼던 자료상이 최근 들어 거래내역을 추적하기 어려운 서비스 분야 업체를 가장하고 심지어 가짜 매출자료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직접 자료상을 만드는 단계로 수법이 진화했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국세청은 거짓 세금계산서를 팔아 상대업체의 가공경비 계상, 외형 부풀리기 등을 도운 혐의가 있는 자료상과 이들과 거래한 업체 등 9개 조직 59명에 대한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1일 밝혔다. 자료상은 실제 물건이나 용역 거래 없이 허위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법정 증빙이 필요한 사업자에게 판매하는 업체다.
자료상의 세금계산서를 사들인 사업자는 이를 비용 처리해 부가가치세 매입 세액공제를 받거나 소득세ㆍ법인세 탈루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권을 따내려 매출을 부풀리는 과정에 자료상의 허위 자료가 동원되기도 한다. 반면 자료상은 가짜 세금계산서 발급으로 매출이 과다하게 인식돼 세금을 많이 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면 버티다가 폐업한다. 세무당국에서 자료상을 ‘폭탄업체’라고 부르는 이유다.
국세청에 따르면 과거엔 자료상이 고철, 비철금속 등을 취급하는 영세 재화공급업자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인력공급업체, 여행사 등 서비스업으로 다변화하는 추세다. 이번에 세무조사 대상이 된 자료상 조직도 인력공급업체 2곳(16명), 여행업체 3곳(14명) 등 서비스업이 절반 이상이다. 이들 중에는 외국 국적을 갖고 있어 세금을 탈루한 뒤 외국으로 달아나기도 한다.
이번 조사 대상엔 은행 대출 조건 충족을 위해 관계사끼리 거짓 세금계산서를 주고받는 순환거래 방식으로 외형을 부풀린 경우, 자료상으로부터 세금계산서를 사들여서 가공의 경비를 만들어낸 뒤 내야 할 세금을 줄인 경우 등이 포함됐다.
국세청은 앞서 진행한 조사에서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 A사의 매출 부풀리기를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A사는 생수병 납품업자를 선정하는 경쟁입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관계회사인 다른 제조업체, 도소매업체 등과 짜고 순환거래를 통해 외형을 부풀린 혐의를 받는다.
인력공급업체 B사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폭탄업체를 만든 뒤 거짓 세금계산서를 발급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B사는 정상적인 거래로 위장하기 위해 폭탄업체에 직접 대금을 지급한 뒤 B사 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로 돈을 도로 빼돌리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를 위해 검찰과 ‘자료상 단속 협의채널’을 구성한 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증거 수집에 나섰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 결과 범칙행위가 확인된 경우 고발 조치 하고 기소, 공판 단계까지 검찰과 협조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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