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두인서 17일까지 44번째 개인전

꽃을 화두로 20년. 한국화가 안진의(49) 홍익대 미대 교수의 작업 여정은 ‘꽃의 시간’이다. 그에게 꽃은 닿을 수 없는 선을 향한 동경이었고 슬럼프의 순간에는 위로였다. 이제 그는 꽃에서 자유를 본다. 안 작가의 마흔네 번째 개인전의 부제 ‘꽃 앞에서 꽃을 그리워하다’에는 이제 꽃과 하나가 되고 싶은 그의 소망이 담겼다.
처음 안 작가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길가에 핀 우리 꽃, 야생화였다. “아주 작아 무릎을 꿇고 가까이 다가가 눈여겨봐야 하는 들꽃들에 매료됐어요. 그 꽃들을 재현하는 데 집중했지요.” 정답이란 없는 그림의 길에서 그는 꽃을 지향점으로 삼았다. “자연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자연과 닮아 갈 수만 있다면 그림을 향해 가는 길은 가치가 있을 테니까요.”
꽃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서 나아가, 그는 화폭에 ‘안진의의 꽃’을 담기 시작했다. 꽃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보잘것없는 일상에 꽃을 녹이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의자나 컵, 전구에 꽃을 결합해 그린 것이다. 벌레를 꽃잎으로 가득 채운 작품도 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어릴 때 악몽으로 트라우마를 안긴 벌레가 보석처럼 귀하게 느껴지더군요. 나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봐왔는데, 자연의 시선으로 본다면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렇게 걸어온 꽃의 길에 2012년 말 훌쩍 다가온 슬럼프가 전환점이 됐다. 2011년 대한민국 미술인상 청년작가상을 받고 이듬해 80여점을 건 대형 전시까지 마친 뒤 중압감이 그를 짓누른 거다. “종일 멍하니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떨어진 꽃잎에 눈길이 갔어요. 비틀어진 꽃잎을 보면서 자연의 순환과 소생의 힘을 느꼈죠. 나 또한 자연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위로를 받았어요.”
다시 살아난 그는 2013년 개인전에서 마른 꽃잎이나 꽃대를 종이에 붙이고 그 위에 붓 터치를 해 생명을 불어넣은 압화들을 선보였다. 전시에 ‘꽃의 시간’이라는 대주제를 붙이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지난달 27일부터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갤러리두인에서 시작한 이번 전시엔 그의 신작 20점이 걸렸다. 꽃과 일체를 꿈꾼 결과물들이다. “꽃에 감정을 실어 대상화한 전작들과 달리 꽃과 하나가 되고 싶은 바람을 담았어요. 그러나 내가 꽃이, 자연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죠. 이뤄질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또 고통스럽더라도, 그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유가 느껴지더군요.” 갤러리두인은 안 작가의 이번 전시를 “유유히 흐르는 세필, 때로는 도발적이고 강렬한 붓질, 표현주의적 회화기법, 추상성이 강한 화면구성을 통해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는 명상적인 시공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17일까지다. 그는 꽃에 매진한 그간의 작업을 정리한 화집 출간도 준비 중이다.
20년 꽃과의 사귐, 질리지는 않을까. “꽃만큼 변화무쌍한 존재가 없어요. 시간, 계절의 흐름, 마주하는 사람의 심리에 따라 다르죠. 아직도 저는 꽃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닉해요. 꽃에서 배운 건 곧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죠.” 그러고 보니 따뜻한 눈길이 담긴 그의 그림은 그를 닮았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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