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어재단 세미나… “혁신성장 위해 신산업과 협업해야”
한국이 이미 구조적인 장기 불황에 돌입하고 있으며 그 주된 원인은 제조업 약화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다. 이런 위기에 대응해 혁신성장을 위한 자체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는 30일 니어(NEAR)재단이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한국형 장기 불황 가능성과 위기 관리대책’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하고 수출 부진으로 이어져 성장잠재력을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수출 제조업이 기술보다는 생산비 측면의 비교우위를 누리고 있었는데, 노동생산성이 낮아지고 경쟁 관계인 중국의 산업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성장잠재력 기여도가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교수는 이미 제조업 부문의 약화가 고착화해 회복을 더욱 어렵게 하는 ‘이력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봤다. 경쟁력 저하로 매출이 감소하고 투자가 줄면서 생산능력이 상실되다 보니 산업이 붕괴되고 성장 잠재력이 저하돼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 전 교수는 “제조업 경쟁력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겐 생존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김도훈 서강대 초빙교수도 “한국 기업이 연구개발(R&D)과 국제 공급사슬에 포함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의 물량을 이기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경제 전문가들 역시 최근 한국 경제가 대외여건으로 어렵기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의 장기불황을 유발한 급격한 부동산 거품 붕괴는 한국에서 발생하지 않겠지만 저출산과 고령화 충격이 일본과 미국을 능가하고 있고, 기초 기술력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성장 잠재력이 약화하면서 정부의 경기 부양책도 효용을 잃고 있다며 “재정 확대가 필요하지만 민간 경제의 자생력을 확보할 정책에 효율적인 재정 집행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결국 민간 투자를 자극하는 기업 생태계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기조강연을 맡은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은 “투자를 늘리려면 경제학자 케인즈가 말한 기업인들의 ‘즉흥적인 낙관’을 자극해야 한다”며 “기업가 정신이 혁신성장에 활용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신산업과 기존 제조업을 연결하는 협업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차국현 서울대 공과대학장은 “정부가 소재ㆍ부품ㆍ장비에 투자한다고 하지만 금방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며 “단기적으로 대-중소기업 간 기술 격차를 줄이고 협업 체제를 강화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도훈 교수는 “제조업과 정보기술ㆍ서비스업이 결합하는 곳에서 신산업이 탄생한다”며 “기존의 제조 대기업도 혁신성장에 적극 참여하고, 정부도 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정부 정책에 대한 언급이 많지만 기업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한국의 경우 벤처 투자 자금이 대부분 정부에서 나오는데, 대기업이 벤처 생태계에 적극 투자해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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