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프리카 오디오자키 ‘해피니스 크루’ 녹음실 인터뷰
“행복을 채워줄 해피니스 크루 카펠라, 린델, 윤하입니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드림플러스 강남에 있는 ‘팟프리카’ 녹음실이 청년 3명의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떠들썩해졌다. ‘해피니스 크루’라는 이름으로 뭉친 이들 3명은 모두 아프리카TV의 오디오 플랫폼 ‘팟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디오자키’들이다.
오디오자키라고 해서 1980~90년대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를 의미했던 디스크자키를 떠올린다면 곤란하다. 이들이 만드는 오디오 콘텐츠는 그 시절의 라디오와 전혀 다르다. 일단 대본이 없다. 평소 보고 듣고 읽었던 내용이나 소소한 경험담까지 일상의 모든 일들을 소재 삼아 자유분방하게 이야기한다. 오디오 방송이지만 청취자들이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댓글을 보면서 양방향 소통도 한다. 이른바 ‘아재 세대’ 눈에는 그게 무슨 오디오고 콘텐츠냐 싶겠지만, 이들은 이미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팟프리카에서 이들의 콘텐츠는 모두 베스트 방송(조회수와 구독자 수 기준) 10위권이다.
오디오 콘텐츠가 다시 뜨고 있다. 눈 깜짝할 새 ‘대세’로 떠오른 비디오 콘텐츠에 급격히 피로를 느낀 사람들과 ‘레트로(복고)’ 트렌드를 따라 옛 것이 품은 감성에 다시 빠지고픈 사람들이 오디오 콘텐츠에 귀를 열기 시작했다. 저력과 가능성을 확인한 오디오 콘텐츠는 이제 또 다른 영역을 넘나들 채비를 하는 중이다.
◇달라진 세상, 새로운 소통
해피니스 크루는 이달로 창단 1주년을 맞는다. ‘크루’라는 말 역시 ‘아재 세대’에겐 낯설다. 요즘 젊은이들은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단을 크루라고 부른다. 그 앞에 ‘해피니스’라는 이름을 붙인 건 청취자들이 고단한 일상을 잠시 잊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송을 하고 싶다는 오디오자키들의 공통된 바람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창단 1주년을 앞둔 이날 방송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로 진행했다.
해피니스 크루 멤버들은 평소엔 따로 활동하고, 각자의 방송 색깔도 분명하다. 대표인 카펠라(본명 이재창ㆍ29)는 아침과 밤 방송 스타일이 다르다. 아침에는 요즘 말로 ‘텐션’을 끌어 올리고, 밤에는 목소리를 잔잔히 가라앉힌다. “아침엔 깔깔거리는 얘깃거리를 소개하면서 ‘웃긴 라디오’를 만들고, 밤에는 청취자들의 연애 사연을 주제로 대화해요.”
부대표인 린델(김종국ㆍ26)이 만드는 오디오 콘텐츠의 콘셉트는 ‘전화 데이트’다. 청취자들의 채팅이나 전화를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사연을 듣고 대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송이다. “청취자가 갑자기 비속어를 써서 당황할 때도 있었고,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 대화가 끊어진 적도 있었죠.” 그러다 보니 남다른 순발력과 대처능력은 필수가 됐다.
‘전직 아이돌 그룹’ 출신인 윤하는 노래 잘 하는 고운 목소리로 청취자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공감한다. 연예계 활동 경험을 살려 신인 발굴에도 종종 나선다. “앨범은 냈는데 홍보가 부족해 많이 알려지지 못한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방송하는 거죠.” 음악을 알릴 기회에 목마른 신인 가수들에겐 선배가 열어주는 단비 같은 기회다.
크루 멤버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삼각대에 고정시켜 놓은 각자의 휴대폰 화면에는 청취자들의 댓글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바로 이게 일반적인 라디오 방송과 가장 큰 차이라고 셋은 입을 모았다. “라이브로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아 바로 읽어주고 그 내용에 대해 서로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자주 참여하는 청취자와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되고, 오프라인 모임으로도 이어진다. 최근엔 멤버들이 청취자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온라인 게임 실력을 겨루기도 했다.
공들여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고 사연이 읽힐지 마음 졸였던 옛 라디오 방송이 그 시절의 낭만을 담고 있다면, 이들의 오디오 콘텐츠는 달라진 세상의 새로운 소통 방식을 보여준다. 소통은 변화를 가져온다. 린델은 대인기피증 때문에 회사를 다니지 못하고 재택근무를 한다는 한 청취자를 알게 됐다. “오디오 방송에서 다른 청취자들과 자주 대화하게 되면서 그 분이 용기를 내서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올 수 있게 됐어요.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보람 있었죠.”
◇’말발’과 ‘꿀보이스’를 넘어
10월로 팟프리카가 출범한 지 1년이 됐다. 팟프리카는 팟캐스트와 아프리카TV를 합친 이름이다. 녹음된 오디오 파일을 내려받아 듣는 형식의 팟캐스트를 녹음이나 라이브 등 콘텐츠 제공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변형한 플랫폼이다. ‘누구나 하는 방송’이라는 아프리카TV의 취지에 따라 유명인이나 방송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팟프리카를 통해 오디오자키로 데뷔하고 있다.
카펠라와 린델 역시 평범한 학생과 직장인이었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카펠라는 의과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하던 중 “너무 외로워서” 오디오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방송에 재미가 붙고 반응도 좋아 결국 공부를 접었다. “오디오 콘텐츠가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면서 개인방송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부모님을 6개월 동안 설득했어요.” 지금은 집에도 방송 장비를 갖춰 놓았다.
린델은 ‘투잡족’이다. 직장에서 퇴근한 뒤 심심풀이로 하던 방송이 이젠 제2의 직업이 됐다. 뒤늦게 재능을 발견한 카펠라, 린델과 달리 윤하는 버리지 못했던 연예활동의 꿈을 개인방송을 통해 이뤄가고 있다. “라디오라는 게 원래 전문가의 영역이었는데, 이제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됐어요. 오디오 플랫폼이 그만큼 접근성을 높인 거죠.”(린델) 개인방송을 꿈꾸지만 비디오 콘텐츠 제작은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탓에 엄두를 못 내는 이들에게 오디오 콘텐츠는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1인 직업이지만 일정은 여느 직장 못지 않게 바쁘다. “매일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야 해요. 여러 방송을 제때 만들려면 시간이 부족해서 여행도 잘 못 다니죠.” 카펠라가 이 얘길 하는 순간 한 청취자가 ‘별풍선’ 100개를 보냈다. 별풍선은 청취자가 오디오자키에게 후원금을 보낸다는 표시다. 이렇게 모이는 후원금은 팟프리카 측이 일정 비율을 가져가고 남은 부분이 오디오자키의 활동지원금으로 제공된다. 아프리카TV가 만든 ‘기부경제’ 모델을 적용한 방식이다.
콘텐츠들이 쌓이면서 팟프리카는 월간 순 방문자수(MAU) 약 7만명을 기록했다. 오디오자키들의 콘텐츠 채널도 월 평균 300~500개씩 꾸준히 개설되고 있다. 콘텐츠가 늘어나는 만큼 좋은 목소리나 현란한 ‘말발’만으론 살아남기 힘들다. “방송에 대한 열정과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청취자들에게 오래 기억된다”고 카펠라는 말했다.
◇“형식 넘나드는 콘텐츠가 목표”
아프리카TV는 인공지능 기업과 함께 오디오 콘텐츠를 자동으로 텍스트화하는 서비스를 올 하반기나 내년 초쯤 선보일 예정이다. 오디오자키가 콘텐츠를 녹음하면 자동으로 문서로 작성되는 것이다. 반대로 텍스트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오디오자키의 목소리를 분석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그 목소리로 녹음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아프리카TV 관계자는 “한 진행자가 만든 콘텐츠가 비디오와 오디오, 텍스트를 넘나드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형식으로 구현되는 서비스를 내놓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오디오 콘텐츠의 변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가장 매력적인 건 이제 누구나 오디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윤하가 청취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해피니스 크루의 인터뷰 방송은 팟프리카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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