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ㆍ장춘순 우영농원 대표 부부, 1만1,800㎡ 푸르메재단 기부
"아주 조그만 땅 입니다. 발달 장애인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게 없어요."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푸르메센터에서 만난 이상훈 우영농원 대표는 총 1만1,800㎡(약 3,570평) 규모의 농원 부지를 기부하기로 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 대표는 우영농원 이사를 맡고 있는 부인 장춘순 씨와 함께 경기 여주에서 10여년 간 농원을 일궈오다 최근 장애인 지원 비영리법인인 푸르메재단에 30억원에 달하는 농원 부지 전부를 기부했다.
이 대표의 부지 기부 조건은 딱 한 가지였다. 농원 부지에 발달장애인들이 들어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스마트팜을 건립하는 것이다. 스마트팜은 농장에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농작물 재배 시설의 온도와 습도 등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는 지능화된 농장을 뜻한다.
이 대표는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손으로 농사를 짓되,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며 “스마트팜이라는 좋은 환경에서는 발달장애인들도 충분히 농부로서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올해 서른 살이 된 발달 장애인 아들을 두고 있다. 그 아들을 키우면서 ‘내가 살아 있을 때는 보살펴 주겠지만,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고민을 늘 안고 살아왔다고 한다.
고민 끝에 이 대표는 부인 장 씨와 함께 10년 전 경기 여주에 농원을 마련해 여기서 아들과 함께 생활하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일단 자신이 먼저 시도해보고, 농원이 자리 잡으면 다른 발달장애인들을 초청해 그들에게 시설을 개방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스마트팜을 건립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10년 간 여러 농사를 지으며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부를 통해 발달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지 기부 결정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보살펴온 아내 장 이사의 의견도 크게 반영됐다. 장 이사는 아들이 교육 시설에서 구타를 당하거나 놀림을 받는 게 힘들어 한 때 이민을 고려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 아들의 교육을 위해 늦은 나이에 대학에 편입해 관련 공부를 하기도 했다.
장 이사는 “발달장애인 가족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앞으로 조성될 스마트팜에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들어와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자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씨 부부가 바라는 스마트팜의 모습은 발달장애인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공간이다. 부지를 기부 받은 푸르메재단은 농장 조성 사업 지원 의사를 밝힌 SK하이닉스와 손잡고 내년 4월부터 스마트팜 건설에 본격 착수한다.
SK하이닉스는 이 씨 부부가 기부한 농장에 약 25억원을 들여 첨단 ICT기술이 접목된 유리 온실과 교육장 등을 조성할 방침이다. 또 향후 농장에서 재배되는 농산품 구매와 임직원 자원봉사 활동 등 농장 운영 전반을 지원하며 장애인 청년들의 재활과 자립을 도울 예정이다.
강지원 푸르메재단 이사장은 “장애인을 위해 스마트팜을 건립하는 사업은 국내 최초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면서 “장애를 가진 청년들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아름다운 농장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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