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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두 달 가까이 조국 장관 관련 의혹과 그의 거취 문제에 관심을 쏟는 사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여러 숙제들이 이목을 끌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 뉴스 태반은 검찰과 법무부발 소식이고, 정치권도 둘로 나뉘어 조 장관을 지키거나 끌어내리려는 일에만 몰두 중이다.
시급한 과제 중 하나인 법원개혁도 찬밥 신세다.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된 검찰개혁에 밀려 언급조차 되지 못한다. 얼마 전 뜻 있는 몇몇 국회의원 주도로 사법개혁의 현실과 과제를 조명하는 토론회가 열렸으나, 토론회 개최 소식과 토론 내용(한국일보 9월 24일자 14면 톱기사)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법을 고쳐야 그나마 첫발을 내딛는 법원개혁이기에, 국회의 무관심은 뼈아프다. 사법농단 의혹의 온상이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법원 관료화 원인으로 지목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를 명문화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갔지만, 처리는 감감 무소식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법원의 ‘제도적 개혁’을 열망했는지를 돌이켜 보자. 멀리 갈 것도 없다. 1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됐고, 3월 전ㆍ현직 판사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법부가 정권과 구체적 사건 처리를 놓고 ‘거래’를 했을 수 있다는 초유의 의혹이 불거졌고,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을 사찰한 증거가 확인됐다. 판사 개인의 독립성과 양심을 보장해 줄 것이라 믿었던 사법부는 그 어느 조직 못지 않게 관료적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법원개혁은 누가 보더라도 시대적 화두였다.
그러나 이제 법원개혁을 말하는 이는 찾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법원개혁이 동력을 잃은 이유는 비단 조 장관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조 장관 지명 전부터 정치권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보수야당은 원래 관심이 없었고, 여당은 전 정권에서 자행된 사법거래와 사법 수뇌부의 전횡 의혹을 검찰 수사 내내 지적했으면서도 막상 법안을 처리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수 차례 토론회를 열어 해답을 찾으려 했던 몇몇 의원 정도를 제외하곤 여당에서 적극적으로 법원개혁 문제를 다룬 의원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 ‘조국 정국’ 이후 관심은 검찰개혁으로 넘어간 상태다.
국회에만 책임을 돌리기도 어렵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그간 조치에는 법원개혁에 대한 절실함을 찾기 어려웠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법관 징계는 솜방망이 수준에 그쳤고, 그나마 법 개정 없이 추진했던 사법행정자문회의는 ‘대법원 들러리 조직’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법원개혁의 법제화 가능성은 꽤나 어두워졌다. 전망을 더 어둡게 하는 부분은 ‘조국 정국’이 어떤 식으로 정리가 되든, 대세는 검찰개혁으로 넘어 가버린 터라 법원개혁이 다시 주목 받을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이미 겉돌고 있는 정기국회에서 법원개혁에까지 관심이 돌아갈 여지는 거의 없고, 정기국회를 마치면 정치권은 곧바로 21대 총선(내년 4월 15일) 준비로 바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개혁은 당분간 지금의 제도 아래에서 운영의 묘를 살리거나 대법원 규칙을 바꾸는 수준의 매우 제한적 차원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법원개혁을 이룰 골든아워는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 지금이야 사법농단 의혹 직후인데다 ‘그립’이 세지 않은 대법원장이 재임 중이라 별 문제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또다시 조직의 이익을 위해 자기 권한을 음양으로 이용하며 무리수를 서슴지 않는 ‘제왕적 대법원장’이나 그런 사법부를 이용하려는 정권이 다시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역사가 여러 차례 증명했듯, 제도가 아닌 사람의 선의에 맡기는 개혁은 롱런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법원개혁 문제는 의석도 가장 많고 정국 주도권을 쥔 여권이 이끌어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검찰개혁에 못지 않은 정치권과 여론의 관심이 절실하다.
이영창 사회부 차장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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