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LP바 ‘음악의숲’ 사장 김재원 
지난달 26일 서울 광희동 ‘음악의숲’ LP바에서 사장 김재원(65)씨가 DJ 자리에서 LP를 틀고 있다. 서재훈 기자

오토바이 한대가 지나가면 벽에 바싹 붙어 피해야 하는 서울 을지로 좁은 골목길 사이에 ‘LP 時代(시대)’라고 적힌 노란 전등이 걸려있다. 지하로 뻗은 계단을 밟을 때마다 오래된 헌책방 냄새가 코끝을 타고 올라왔다. 비틀스의 ‘헤이 주드’가 흘러 나오는 문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자 정면에 빼곡히 꽂혀 있는 LP들과 눈이 마주쳤다. 벽면을 가득 채운 선반도 비좁아 바닥까지 차지한 LP들을 눈으로 구석구석 좇다 천장에 붙어 있는 계란 판과 스펀지들에 시선이 멈추자 DJ 자리에 앉아있던 김재원(65)씨가 걸어 나왔다.

“음악 소리가 이곳 저곳 부딪히면 소리가 반사돼서 ‘왕왕왕’ 울리거든요.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 새로 인테리어를 할 수 없어 이렇게라도 반사음을 잡아줘야 해요.”

이 공간은 20년 동안 의류 사업을 하던 김씨의 새 삶의 터전이자, DJ라는 인생 2막을 16년째 이어올 수 있게 해 준 LP바(Bar)이다. 중학생 때 용돈으로 구매한 레코드부터 LP바를 열기로 결심한 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구한 음반들까지. 50평 남짓한 지하 가게를 가득 채운 8,000여장의 LP들은 그만의 특별한 수집품에서 일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 귀한 창업 아이템이 됐다.

 ◇외환 위기로 맞은 인생 1막의 끝 

대학 졸업 후 1978년 무역회사에 입사한 김씨가 주로 하던 일은 미국 바이어들의 주문에 맞게 옷을 제작해 수출하는 일이었다. 승승장구 할 줄 알았던 그의 인생은 한국 경제의 최대 위기로 불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으면서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1998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컨테이너에 옷들을 실어 보내면 참 보람찼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김씨의 눈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그는 “IMF가 터지면서 노동 집약적 산업은 죄다 쓰러지기 시작했다”며 “공장들이 다 중국, 베트남으로 빠져나가니까 생산할 곳도 마땅치 않았고, 솜씨 있는 미싱사들도 공장 따라 다 떠나갔다”고 떠올렸다.

배운 게 옷 장사뿐이라 “내수 쪽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던 그가 새로 시작한 것도 작은 옷 가게였다. 1998년 문을 연 그의 가게는 맞춤형 의류 제작 전문점이었다. 주요 손님들은 방송국 코디네이터들이었다고 한다. 개그맨, 가수 등 한 사람만을 위한 옷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가게 일을 하다 보니 조그만 창고가 필요했는데, 둘 곳 없던 LP들을 그 곳에 옮겨두면서 조금씩 그의 인생에 변화가 시작됐다. 옷 장사를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을 불러 LP를 들으면서 맥주를 마시던 창고는 그들만의 아지트가 됐다.

아지트가 ‘우리만의 공간’인 걸 아쉬워한 건 김씨의 친구들이었다. 그는 “당시만 해도 LP를 들을 수 있는 전통찻집은 있었지만, 간단한 술과 함께 LP를 즐기는 곳은 드물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적극 권유했다”며 “그때 그 시절 문화와 낭만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지인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고 말했다.

음악다방이 아닌 ‘1세대 LP바’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당장 종로6가에 ‘임대’ 딱지가 붙어 있던 옛날 다방 주인을 찾아갔고 덜컥 세를 얻어 옷 가게를 정리한 뒤 2003년 첫 LP바 운영을 시작했다.

김재원씨가 LP바 벽면을 가득 채운 LP들을 정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파리 날리던 LP바의 ‘초짜’ 사장님 

첫 가게는 가지고 있던 3,000장의 LP들로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손님이 원하는 음악’ 사이의 괴리가 문제였다. 신청곡을 받으면 틀어줘야 하는데 그 음반이 없어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김씨는 “노래라는 게 각자 다른 사연이 있어서 일일이 맞춰줘야 하는데 3,000장으론 턱없이 부족했다”며 “음반 구하려고 황학동에서부터 지방까지 날아가서 구해오고, 인터넷으로도 찾으면서 9,000장 가까이 모아 구색은 맞췄다”고 설명했다.

대로변에 자리 잡아 제법 목 좋은 곳이었지만 파리만 날렸다. 생전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서빙도 쉽지 않았다. 맥주를 들고 가는 쟁반이 덜덜 떨릴 정도로 ‘초짜’티가 팍팍 났다. ‘음악은 듣고 싶을 때 들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24시간 운영을 3년 동안이나 하며 버텼지만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김씨는 “손님도 없었는데 어쩌다 한 분 들어오시면 ‘어떻게 응대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흐뭇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로 정신이 없었다”며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듯 부딪히면서 새로운 일에 익숙해지는 데 꼬박 3년을 쏟았다”고 했다.

조금씩 수익이 나고 가게 운영이 안정되기 시작한 건 청계천 복원 사업이 마무리될 즈음이다.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창 너머로 LP들을 보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복병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그는 “4년차가 됐을 때쯤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하니까 주인이 직접 가게를 하겠다며 나가달라고 했다”며 지금의 을지로 귀퉁이로 옮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의 가게는 밤에도 음악을 틀 수 있어야 하고 임대료가 저렴해야 하는 LP바 특성상 중구 광희동 좁은 골목길까지 옮겨오게 됐다.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주변 시세보다 임대료가 절반 수준이어서 이사를 결정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사 온지 얼마 안됐는데 빗물이 차 그때 잠긴 LP들을 눈물을 머금고 버린 기억도 있다”며 “추억을 판다는 건 낭만적이지만 위기는 야속하게 계속 찾아오더라”고 말했다.

2013년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김재원씨의 LP바를 배경으로 촬영된 장면.
 
 ◇뚝심으로 지켜 온 공간 ‘핫플레이스’ 되다 

계속되는 위기에도 그가 LP바를 포기하지 않은 데에는 확실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LP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5060세대뿐 아니라 디지털에선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 감성이 젊은이들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그는 “바늘이 음반을 타며 지글대는 소리는 LP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성”이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요즘 음원은 디지털로 바뀌면서 파형이 깎이는 변형을 겪기 때문에 잡음도 없고 100번을 들으면 100번 다 똑 같은, 건조한 느낌의 소리가 난다”고 했다. 이에 반해 “LP 소리는 좀 더 푸근하고 풍성하기도 하고, 추울 때와 더울 때, 습기 찼을 때 다 다른 소리가 나는 매력이 있어 언젠가 돌고 도는 유행에 LP가 포함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복고’ 인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그의 가게는 금방 입 소문을 탔다. 영화 ‘써니’와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등 인기 작품들이 촬영한 명소로 유명해지면서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물론 지금까지 뚝심 있게 가게를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도 인기를 지속하는 데 한몫 했다. 김씨에게서 일을 배워 LP바를 차린 곳이 4개로 불어났다.

영화 '써니'에 등장하는 김재원씨의 LP바.

김씨는 “한 번 온 손님을 한번 더 올 수 있게 만들겠다는 각오가 가장 중요하다”며 “신청곡을 적어 내는 손님이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유추하고 같은 계열의 음악을 틀어주면 그 손님은 이 공간이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라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신청곡이 들어오는 대로만 틀어주는 게 아니라 전문 DJ 못지 않게 장르를 바꿔가며 분위기의 균형을 맞춰줘야 하고, 30년, 40년씩 나이를 먹으면 만져줘야 하는 오디오 기기들에 대한 지식도 꾸준히 습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덕업일치’ 성공 비결? “왕년 잊고 즐겨라” 

취미로 즐기던 LP 수집과 감상이 ‘업’(業)이 된 김씨는 요즘 말로 ‘덕업일치’(관심사가 직업이 되는 것)에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복고 열풍을 타고 그저 운 좋게 잘 풀린 사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취미를 활용하는 창업을 고민하는 이에게 그가 건네는 조언은 절대 가볍지 않다. “왕년은 잊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씨는 “우리 나이 정도 연륜이 쌓이면 겪어 왔던 사회생활, 누렸던 대우들이 생각나서 처음부터 배우고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 않다”며 “하지만 사회 생활의 첫발을 내딛던 그 때, 20대 첫 월급을 받을 때와 같은 마음가짐이 있어야 인생 2막이 펼쳐진다”고 강조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왕년의 기억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진정으로 즐길 줄 알아야 버틸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씨는 “최소 2년은 논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먹고 사는 데 급급하다면 절대 취미를 활용한 창업은 추천하지 않는다”며 “밥벌이라 생각하고 매달려버리면 아무리 좋아하던 취미라도 금방 지쳐 떨어져나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조급하다 보면 취미도 잃게 될 수 있으니 당장의 수익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일 때 도전하라는 조언이다.

김재원 음악의숲 LP바 사장이 LP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서재훈 기자

“치매에 걸려 LP를 못 찾게 된다면 그만 둬야죠”라며 웃는 그는 지금도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을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내가 좋아하고, 손님이 좋아하는 이 일을 힘 닿는 데까지 하며 인생 2막을 유지해 보려 한다”며 “그러려면 내가 먼저 지치지 않고 진심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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