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가까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자극적인 외신 보도에 발끈했다. ‘혼전 및 혼외 성관계 금지 반대’ 사실에만 초점을 맞춰 부패 척결 등 정작 중요한 요구 사항은 가려지고, ‘무슬림은 미개하다’ 같은 그릇된 편견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29일 자카르타포스트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은 23일부터 거의 매일 수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국토 전역에서 수천 명이 운집한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과의 충돌로 지방에서 두 명을 포함해 세 명이 숨졌고, 수백 명이 다쳤다. 수십 명이 실종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번 대학생 시위는 32년 장기 독재자 수하르토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1998년 민주화 운동 이후 최대 규모다.
학생들은 이번 시위가 단순한 ‘섹스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혼전 및 혼외 성관계의 범죄화는 이들이 맞서는 일부에 불과하고 가장 작은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에 7대 요구 사항을 강조했다. △형법, 토지법, 노동법 개정안 거부 및 부패방지위원회(KPK) 개정안 폐지, 성폭력법안 통과 △문제가 있는 KPK 지도부 사퇴 △군과 경찰의 민간 사무실 보유 금지 △파푸아 정치범 석방 △시위 참가자 기소 중지 △칼린만탄(보르네오)섬과 수마트라섬 열대림 화재 책임 기업 처벌 및 허가 취소 △인권침해자 재판 회부 등이다. 아말린다 사비라니 가자마다대 정치학과 교수는 “문제가 하나만 있지 않다, 다양한 성격의 요구들이 이번 시위의 추진력”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학생과 시민들은 대통령 모욕 및 신성 모독 처벌 기준을 강화한 부패방지법의 후퇴와 KPK의 권한 축소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회사원 헤르만(42)씨는 “서민 출신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이 부패 문제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에 시민들이 분노를 느끼는 것”이라고 한국일보에 말했다. 여기에 현 정부의 전반적인 국정 운영에 대한 실망과 경제 침체 상황도 불만 요인으로 더해졌다.
조코위 대통령이 법안 보류, 시위 희생자 조사 착수 등을 내걸며 학생 지도자 면담을 제안했지만, 전국대학총학생회연합(BEM-SI)은 “면담 내용 TV 생중계와 7가지 요구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발표”라는 두 가지 조건을 달았다. “지금 필요한 건 회담이 아니라 대통령의 확고한 약속”이라는 것이다. 공은 다음달 20일 공식 재취임하는 조코위 대통령에게 넘어간 상태다. 30일에도 대규모 시위가 자카르타 도심에 예고돼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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