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으로 뒤진 LG의 7회초 수비가 시작되자 2만5,000석을 꽉 메운 잠실구장 관중석이 술렁였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동현(36ㆍLG)이 마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류중일 LG 감독과 구단의 약속대로 은퇴 경기가 성사된 순간이었다. 이동현은 29일 잠실 두산전에서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두산 박세혁과 마주했다. 초구 스트라이크에 이어 2구째는 파울, 이후 긴장한 탓인지 내리 볼 3개를 던져 풀카운트가 됐다. 이어 이동현의 손 끝을 떠난 6구째 139㎞짜리 직구에 박세혁의 방망이가 헛돌았고, 이동현은 오른손을 번쩍 치켜 올려 포효했다. 지난 8월 통산 700경기 출전을 채운 뒤 은퇴를 선언하고 한 달여 만에 오른 701번째, 19년 현역 마지막 등판이었다.
한 타자만 상대하기로 한 이동현을 교체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이는 박용택이었다. 둘은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2002년) 준우승 주역이다. 이동현에 이어 내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하기로 한 박용택이 투수코치를 대신해 감동의 퍼포먼스를 마련한 것이었다. 박용택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벅차 오른 감정을 주체할 수 없던 이동현은 글러브로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석 사방을 향해 차례로 인사한 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더그아웃으로 옮겼다. 2001년 1차 지명으로 LG에 입단한 이동현의 개인 통산 성적은 701경기 910.1이닝 53승 47패 41세이브 113홀드, 평균자책점 4.06이다.
경기 전엔 아버지 이형두씨의 시구를 받은 뒤 자리에서 큰 절을 했다. 이동현은 "우리 부모님께서 어렵게 사셨다. 아버지는 지금도 일을 하신다"라며 "아버지께서 일하러 어떤 집에 가셨는데 내 유니폼을 발견하셨다. 그런데 '내 아들이 이동현이다'라고 말을 하지 못하셨다. 그게 참, 죄송했다"고 했다. 그는 "그 동안 아버지께서 무섭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야구장에 오지 않으셨다. 오늘은 아버지와 포옹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시구자로 모셨다"고 설명했다.
2004년과 2005년, 2007년 세 차례 팔꿈치 수술을 받고도 불굴의 의지로 19년을 버틴 이동현은 "후배들이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따낸 게 내겐 큰 선물이다. 같이 가을 무대에서 뛰면 좋겠지만, 박수칠 수 있는 선배로 남는 것도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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