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번역 소개한 니나 아이뎀
“어려운 ‘채식주의자’보다
‘소년이 온다’ 먼저 소개한 게 먹혀”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은 고무적인 상황이지만, 한림원의 고향이자 노벨상 수상작가 8명을 배출한 노벨문학상의 종주국 스웨덴에 비하자면 갈 길이 멀다. 스웨덴 소설은 2002년부터 2015년까지 다른 언어로 번역된 책의 종수가 500편에서 800편으로 50%이상 늘었다. ‘노르딕 누아르’ 장르로 통칭되는 스웨덴의 범죄소설이 인기를 견인했다. ‘말괄량이 삐삐’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밀레니엄’ 시리즈 ‘렛미인’ 등 국내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세계적 베스트셀러도 많다. 스웨덴어가 사용 인구 1,000만명인 소수언어임을 감안한다면 문학 저력에서만큼은 우리가 본받을 점이 많다.
스웨덴 문학의 강세는 영미권으로의 활발한 진출과 이를 가능케 하는 번역가 육성, 편집자들의 고심이 조화된 결과다. 스웨덴 최대 독립출판사 나투어 앤 쿨투어(Natur&Kultur)의 소설 부문 편집자로서 한강 작가의 세 작품(‘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을 모두 스웨덴에 번역 소개한 니나 아이뎀은 28일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스웨덴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훌륭한 문학 에이전트들이 전략적으로 활동해왔고, 동시에 워크숍과 정부지원, 펀딩 등도 활발히 이뤄진 덕에 세계시장에 많이 진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뎀 편집자는 특히 외국문학이 번역시장에서 안착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홍보전략 또한 치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에서 한 작가의 소설은 맨부커상 수상 작품인 ‘채식주의자’가 2017년 1월에, 5ㆍ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가 이에 앞선 2016년 10월에 번역됐다. 니나는 “’채식주의자’가 훌륭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몽환적이고, 기묘하고, 더러는 소화하기 버거운 작품인 데 반해 ‘소년이 온다’는 한국적 맥락에서 폭력, 트라우마, 집단경험을 다루고 있어 한국의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작가라는 맥락을 먼저 만들 수 있었다”며 “그 덕에 ‘채식주의자’가 성공적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전략을 통해 한 작가는 역사를 관찰자 시점에서 치밀하게 정리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나 프리모 레비 등의 작가와 비견돼 소개됐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는 스웨덴에서 각각 7,000부와 2만 5,000부가 팔렸다. 이전에 스웨덴에 소개된 적 없던 작가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아이뎀 편집자는 한국문학이 스웨덴을 비롯해 북유럽 국가에 더욱 활발히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영문판을 스웨덴어로 중역하는 과정을 거쳐 출간됐지만, ‘흰’의 경우 스웨덴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로 이뤄진 부부 번역가에 의해 번역됐다. 영미권에서의 성공 없이도 세계 시장으로 뻗어갈 수 있는 네트워크가 새롭게 마련된 것이다. “훌륭한 작품은 세계에 너무 많아요. 번역 출간 역시 결국에는 국가가 아닌 작품성이 기준입니다. 한국의 훌륭한 문학을 세계에 퍼뜨릴 수 있는 전문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테보리=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