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평화네트워크, 하자센터.
1999년 나란히 문을 연 시민운동단체, 대안교육 기관이다. 포스트모던이 시대정신이던 당시, 기성 제도를 벗어나 사회 방향을 모색하려는 시민운동이 들끓었고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비정부기구(NGO)활동은 절정에 달했다. 국내 대표적인 시민운동단체로 자리 잡은 문화연대 역시 같은 해 9월 18일 출범했다. ‘불온한 상상력과 진보적 감수성의 놀이터’를 표방한 단체는 영화 ‘거짓말’이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직후,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초기부터 주목받았다.
문화연대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18일 기념 포럼 개최를 시작으로 다음달까지 관련 행사를 이어 간다. 24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서 만난 정용철(48) 문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서강대 교수)은 “포럼에서 앞으로 맞을 20년에 대한 비전을 발표했다”며 “달라진 시대에 맞는 구체적인 활동방향은 다음달 10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 함께 공동집행위원장이 된 정 교수의 전공은 스포츠 심리학.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는 2010년 귀국 후 수많은 프로 운동선수를 상담했고, 이 경험을 토대로 국내 스포츠계 갑질, 폭력, 성폭력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면서 시민운동에 발을 디뎠다. 문화연대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건 2014년 집행위원을 맡고부터다.
문화연대는 창립 직후부터 문화예술계 굵직한 이슈를 선점했다. 정 교수는 “외부 단체와 협업을 많이 해 오롯이 ‘문화연대 사업’을 손꼽기 힘들다”면서도 “대마초·문신 합법화,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 프랑스 외규장각 반환 요구” 등을 대표적인 사업으로 들었다. 용산참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엔 문화예술계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국내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성장했지만 갈수록 선점한 정책, 사회이슈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최근 5년 간 문화연대가 선점한 이슈는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하나’라는 지적에 정 위원장은 “아프지만 맞는 지적”이라며 “활동가 세대교체가 순조롭게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15년, 20년째 활동하는 분들이 많은데 △문화연대 내부의 문화적 후진성 △활동가 업무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소모되는 양상이 맞물린 결과”라고 덧붙였다.
위기는 또 있다. 정 위원장은 자신이 문화연대에 합류했던 당시를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시민운동단체 영향력이 대폭 축소된 ‘엄혹한 시절’로 규정했지만 “한편에서 비판할 대상이 뚜렷해 결속력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서) 결속력이 떨어지며 내부 지지층 이탈이 일어나기도 하고, 선명한 색을 갖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정 위원장은 “3, 4년 전부터 문화운동 후속세대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일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문화 활동가 대회’가 그 결과”라고 말했다. 2016년 서울에서 시작한 문화 활동가 대회는 매년 가을 전국의 창작자, 매개자, 연구자, 운동가 등 문화예술관계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행사다.
18일 창립기념 포럼에서 발표한 ‘사회문화운동을 위한 2019 선언’은 20년간 달라진 시대 가치를 반영했다. ‘경제, 노동, 환경, 생태, 과학기술, 스포츠 등의 영역에서 진보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사회운동과 연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기치 아래 △미투운동으로 드러난 문화예술계의 젠더폭력에 맞설 것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 생태적 문화사회 운동에 나설 것 등을 추가했다. 구체적인 방향은 10월 10일 서울 용산구 인터파크홀에서 열리는 20주년 기념행사 ‘이십전심, 이심전심’에서 발표된다. 같은 달 1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서대문고 연남장에서 특별전시회 ‘장수의 비결’을 연다. 정 위원장은 “한국사회에서 문화의 관점, 문화의 역량, 문화의 가치, 문화의 권리가 지금보다 더 많이 보장되기 위해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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