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국제 사회가 이른바 ‘큰 도전(Grand Challenge)’라 불릴 만한 거대한 사회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는 새롭지 않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기후변화, 에너지 자원 고갈, 급격한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깨끗한 물과 식량 공급의 어려움 등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경우 인류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만약 우리가 기후변화를 막지 못한다면, 깨끗한 물과 식량 공급은 요원한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에너지 자원 고갈이나, 급격한 인구 증가를 막지 못할 경우에도 인류가 받아들일 결과는 결국에는 같을 것이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들이 인류 앞에 놓여 있지만, 그렇다고 해결책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만약 혁신적 기술개발을 통해 깨끗한 에너지를 저렴하고,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도전들은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정하고 무한한 자원으로서 최근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수소에너지가 상용화된다거나, 현재의 해수 담수화 플랜트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깨끗한 물 공급과 더불어 해수에 용해된 수십억 톤에 달하는 광물자원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렇듯 에너지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지식 창출의 최전선에 있는 대학이 연구와 교육이라는 핵심 가치를 통해 에너지 기술 혁신을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물론 이미 많은 기존의 대학들이 에너지를 연구하고 있지만, 미래 에너지 연구를 위한 젊은 학자와 엔지니어 육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일반적인 대학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고도의 지식을 갖추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인재를 육성할 막중한 책무가 있기 때문에, 특정분야의 연구나 교육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정된 인적, 재정자원을 특정 학과나 교수진에게만 제공할 수도 없을뿐더러, 기존 자원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도 구성원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본다면, 세계 산업을 뒤흔들 만한 에너지 기술개발을 위해 기존에 없던 새롭고 혁신적인 에너지 특화대학인 한전공대를 설립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는 필자와 같이 대학에서 오래 종사해온 학자들에게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특화된 공과대학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의 여러 대학에서 증명된 바 있다. 필자가 총장으로 재임했던 독일의 아헨공대의 경우 연구 중심의 클러스터형 대학으로서, 캠퍼스 내 입주기업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에너지, 로봇공학 등의 분야에서 그간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왔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지난 20년간 3만여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인구가 30만에 불과한 중소도시인 아헨의 경제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아헨은 대학도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헨공대가 차지하는 경제적, 사회적 비중이 매우 크다.
만약 한전공대도 에너지 기업들과 연구, 창업 등의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만 갖춘다면 조기에 우수한 연구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에는 아헨공대가 그랬듯이 한전공대가 위치한 나주라는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도 거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한전공대는 지역이나 국가 차원을 넘어 인류가 직면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한전의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으로서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한전공대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물론 한국사회와 산업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버카드 라후트 독일 아헨공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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