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냉장고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에 잠 못 이루던 밤을 그는 기억한다. 수도권 전세 아파트를 전전하면서 한없이 올라가는 보증금을 감당하기 힘들어졌을 때, 동네에 정들만하면 이사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지쳤을 때, 그는 아파트 보증금으로 살 수 있는 오피스텔을 사버렸다. 그때 부동산 중개인은 말했다. “오피스텔은 값이 오르지 않아요. 나중에 저를 원망하시면 안 됩니다.” 번역 계약서를 받을 주소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메일을 보내자, 출판사 직원은 답장을 보냈다. “어머, 선생님! 작업실을 마련하셨군요. 축하드려요!” 그리고 어머니는 만류했다. “오피스텔은 범죄의 온상이라던데...”
그의 소유가 된 오피스텔은 나쁘지 않았다. 깨끗하고 쾌적했다. 그런데 넓이가 애매했다. 아직 학생인 아들에게 하나뿐인 방을 내주고,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옮겨온 짐들을 여기저기 부려놓고 나자, 그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부엌에 해당하는 공간이 제법 널찍해서 그곳을 부엌 겸 식당 겸 작업실 겸 침실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 무렵 그는 침대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어떻게 침대도 없이 그렇게 사느냐고 군소리하는 사람이 있으면, 1. 이부자리는 공간 활용에 좋다. 2.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이불을 펴고 개키는 일을 하면,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쓰게 되는 장점이 있다, 하고 역설하곤 했다.
그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실은 ‘가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가난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올리곤 했던 장면은 무료급식소의 줄서기나 폐지 줍기, 창문 없는 고시원 방 같은 것들이었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라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도 꽤 있었고, 자신이 하는 노동에 비해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곤란한 지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마땅히 그들의 것이어야만 하는 것을 그가 조금 빼앗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보기도 했다.
몇 년 간격으로 집을 옮기는 동안 그는 자신의 주거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넓이가 애매한 집을 산 것도 그런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막상 자기 소유인 집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오히려 밤마다 자신의 가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냉장고 때문이었다. 낡은 냉장고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은근히 시끄러웠다. 신경을 긁었다. 바닥까지 웅웅 울리는 것 같았다.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새 냉장고를 사면 소리가 좀 덜할까, 차라리 그 무렵 이름을 날리던 철학자의 주장대로, 반자본주의적 행위라는 핑계를 대고, 냉장고를 아예 내다 버릴까 궁리하기도 했다. 내용물을 비우면 그나마 모터가 돌아가는 주기가 뜸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에는 시장에 가서 식료품을 조금씩만 사려 애쓰기도 했다.
이전에는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으나, 그는 자주 넓은 공간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넓은 집을 가지려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고 돈을 갚으려면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그 지점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상상을 그만두었다. 일을 더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아직 가난한 게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있었으니까. 이제 그는 가난이 단순하고 획일적인 결핍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서러움 같은 것도 아니었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하기 싫은 일을 견뎌야 하는 것이고, 주위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한 그 역시 점점 더 좁은 공간으로 몰리다가 냉장고가 있는 방에 영원히 갇히게 되리라는 것을.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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