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정년 연장과 사다리 걷어차기

입력
2019.09.30 04:40
31면
0 0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정부가 사실상의 정년연장을 추진하는 내용이 담긴 인구변화 대응방안이 발표됐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정부가 사실상의 정년연장을 추진하는 내용이 담긴 인구변화 대응방안이 발표됐다. 연합뉴스

지난 9월 18일 정부는 ‘인구구조 변화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에는 생산 연령 인구 확충을 위한 정책으로서 고령자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계속고용 제도란 60세 정년 이후 일정 연령까지 기업에 고용 연장 의무를 부과하되 기업이 재고용, 정년 연장, 정년 폐지 등 다양한 고용 연장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2년부터 그 도입을 검토한다고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시행 시기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연금 개혁 또는 생산 연령 인구의 확충 정책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건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에 대한 객관적 검토 없이 외국의 논의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고령자 계속고용 제도는 일부 근로자들에게만 혜택을 줄 가능성이 크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근로자의 지위는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인지 여부, 직장이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 그리고 그 직장에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지에 의하여 좌우된다. 노동시장의 상층부에는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 또는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정규직들이 있는데, 이들은 전체 근로자의 약 20%에 불과하다. 이들과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근로자들 사이의 격차는 심각하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과 연공급 시스템의 혜택을 누리는데 비해 나머지 근로자들, 특히 하위 50% 근로자들은 불안정한 고용 및 직무급 시스템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하위 50% 근로자들에게 정년 연장 문제는 딴 세상의 일이다. 그들이 취업하는 저임금 일자리에선 정년 제도가 큰 의미가 없다. 이른바 뿌리 산업이란 중소업체는 만성적 인력 부족 상황에 시달리고, 아파트 및 건물 관리 등 서비스 산업에선 고령자의 취업이 일반적이다. 결국 정년 연장에 대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는 건 상위 20% 근로자들이다.

고용 연장을 의무적으로 시행한다는 전제 아래 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정부는 법률을 통해 기업에 일정 연령까지 고용을 연장할 의무를 부과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무작정 기업에 고용 연장 의무를 부과하면, 노사가 계속고용 제도를 해당 기업의 현실에 맞게 설계하기 어렵게 된다. 특히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에선 임금 제도의 개선 없이 지금의 불평등한 연공급 시스템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합으로선 법률에 의해 정년 연장이 확보된 상태에서 연공급을 직무급 시스템으로 바꾸거나 임금피크제 등을 받아들일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고임금 근로자들의 고용 보장은 그 자체로는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년 연장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 때문에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인다면, 그 피해는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려는 청년들에게 돌아간다. 고참 직원의 급여가 신입 직원보다 3배 이상 높은 현 연공급 시스템에서 임금 제도의 개혁과 연계되지 않는 고용 연장은, 노동시장의 상층부에 있는 과거 세대가 새로 성장하는 청년 세대의 미래를 뺏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 가정은 이미 우리 노동관계의 현실이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40, 50대 근로자의 비중은 20, 30대를 압도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노사가 고용 연장과 임금 제도의 개선 문제를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정부는 그 논의를 지원하는 데 힘을 쏟는 정책이다. 의무적 고용 연장의 시행은 추후 임금 제도의 개혁 상황과 연계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과거에 한 고용 연장 정책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2013년 고령자고용법의 개정을 통해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제도로 실제 정년이 연장되는 혜택을 입은 근로자는 일부에 불과했다. 오히려 많은 근로자에게는 희망퇴직 등 고용의 불안정이 더 가까이 다가왔고 청년의 일자리는 줄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