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10시 경기 화성시 팔탄면 가재3리 마을입구.
듬성듬성 놓인 가로등을 제외하고 불빛 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왕복 4차로 양쪽으로 공장과 식당 등이 즐비했지만 모두 문을 닫아 컴컴했다.
입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불빛이 보였다. 수원 방향으로 나가는 버스정류장.
‘화성 그놈’이 7차 범행을 저지른 뒤 시외버스에 올라탔던 곳이다. 9차와 10차 사건을 제외하고 수원역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다.
7차 사건은 1988년 9월 7일 팔탄면 농수로에서 안모(당시 54세)씨가 숨진 사건이다. 안씨는 버스에서 하차 한 뒤 귀가 중 변을 당했다.
‘화성 그놈’은 안씨를 살해한 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달려와 버스에 올랐다. 그가 올라 탄 것으로 추정되는 버스정류장은 안씨가 발견된 농로와 불과 200m 거리에 있다.
당시 버스기사와 안내양은 ‘화성 그놈’을 또렷이 기억했다.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바지가 무릎 높이까지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수상한 점이 있었기에 기사와 안내양은 그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눈치를 봐 가며 머릿속에 담았다.
7차 범행 때까지 범인 윤곽조차 잡지 못했던 경찰이 몽타주를 작성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가 올라탄 시외버스는 지금의 수원역으로 향했다. 현재도 한 개 노선의 버스가 당시와 비슷한 노선으로 운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버스는 화성시 정남을 출발해 가재리~팔탄입구~장안대~봉담IC~수영오거리~오목천사거리~고색동을 거쳐 수원역까지 운행한다.
바로 이 노선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2·4·6차 사건 현장이 인접해 있는 것이다. 8차 사건도 동일선상에 있지만 모방범죄인데다 범인이 잡힌 탓에 제외했다.
4차 사건은 1986년 12월 14일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에서 이모(23)씨가 숨진 사건으로 7차 사건이 발생한 가재로에서 수원터미널로 갈 때 지나가는 길이다. 당시 터미널은 지금의 수원역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다.
1986년 10월 20일의 2차와 1987년 5월 2일의 6차도 태안읍 진안리 일대에서 발생했는데 현재의 버스노선과 인접해 있다.
특히 진안리는 경찰이 5·7·9차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해 유력한 ‘화성 그놈’으로 지목한 이춘재(56)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다만 현재의 버스노선이 새롭게 조성된 도심을 중심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당시 노선과 조금은 다를 수 있다. 이 경우 당시 나름의 번화가였던 오산과 수원의 중간 지점인 현재의 병점을 경유해 태안읍으로 해서 수원터미널로 갔다면 다른 사건지역을 거치게 된다.
지금의 병점역 방향으로 조금 우회했다는 점을 가정하면 1·3차(태안읍 안녕리)·5차(태안읍 황계리) 등과 인접, 시외버스 노선을 중심으로 연쇄살인이 벌어졌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진다.
경찰도 당시 ‘화성 그놈’이 시외버스를 노선을 따라 범행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7차 범행 외에는 다른 버스기사나 안내양 등으로부터 ‘화성 그놈’ 인상착의 등에 대한 추가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4차 사건에서 채취한 DNA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재분석을 의뢰한 상태”라며 “자세한 내용은 현재 수사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급은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화성=김진웅 기자 woong@hankookilbo.com
화성=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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