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관 “3차 북미 정상회담 전망 밝지 않다” 경고
폼페이오 “연락 와 만나러 가길 고대” 北에 공 넘겨
북한이 27일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담화를 통해 연말 개최 가능성이 거론되는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망이 밝지 않다”고 경고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현명한 선택과 용단”을 압박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계산법’에 화답하고, 미 의회내 탄핵 추진 위기에도 ‘비핵화 협상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북한이 실무협상을 앞두고 샅바싸움에 들어가면서 당초 9월 말로 예상됐던 실무협상 일정이 10월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김 고문은 담화문에서 “(북미) 수뇌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이행하기 위한 실제적인 움직임이 따라서지 못해 수뇌회담 전망은 밝지 못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6ㆍ12 ‘싱가포르 합의’에 따라 북한은 미군 유골을 송환하는 등 노력했지만, 오히려 미국은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하고 제재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이어 “워싱톤 정가에 우리가 핵을 포기해야 밝은 미래를 얻을 수 있다는 ‘선(先) 핵포기’ 주장이 살아있고, 제재가 우리를 대화에 끌어낸 것으로 착각하는 견해가 난무한다”며 “수뇌회담이 열린다고 돌파구가 마련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과는 다른 정치적 감각과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며 “현명한 선택과 용단에 기대를 걸고 싶다”고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응원과 압박의 메시지가 같이 담겨있다”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주장 자체가 새로울 게 없어 담화 타이밍에 주목한다”며 “탄핵 정국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협상에 집중할 여지가 줄고 강경한 대북 정책을 펼치라는 압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 북한이 ‘흔들림 없이 협상에 나서달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협상의 ‘산증인’ 김계관 전 외무성 제1부상이 ‘고문’ 직책으로 담화를 발표한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김계관은 ‘1차 북핵위기’ 때인 1993년 북미 고위급 차석대표로 외교 무대에 첫 선을 보였고, 2004~2008년에는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역임했다. 정부 당국자는 “리용호 외무상 등 협상팀이 이런 주장을 하면 미측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며 “베테랑인 김 고문이 협상 테이블에서 한 발짝 떨어져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모습을 연출한 셈”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는 의도도 보인다. 23일(현지시간) 한미 정상은 ‘70년 북미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북한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전보장에 ‘총론’에서 화답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일 것임을 시사하는 언급은 없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 모델을 비판하며 ‘새로운 방법론’을 언급했는데, 이번 회담에서 언급이 없었다”며 “북미 대화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명분을 만들어 달라는 게 북한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이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한 것은 바꿔 말하면 지금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유엔총회가 열린 뉴욕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북미 실무협상 계획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9월 말까지 실무협상이 있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내비친 공개적 성명을 봤다”며 “우린 전화벨이 울리고 그 전화를 받아서 북한이 가능한 장소와 시간을 알고 찾아가게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9일 담화를 통해 ‘9월 하순경 협상 의향’을 밝히고 미국도 “준비됐다”고 응해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되는 듯 했으나, 북한은 일정 확답을 주지 않은 채 ‘새로운 계산법’에 대한 여론전만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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