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프진’ 등 국내 유통이 불법인 유산유도약(낙태약)의 실제 구매건이 7년간 약 1,8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중 60%는 정품을 가장한 중국산 복제약이었다. 불법유통이 되려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만큼 유산유도약의 안전성과 허용여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일보가 온라인상의 유산유도약 판매 혐의(약사법 위반)로 형이 선고된 10개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2012년부터 올해 3월까지 약 7년간 총 1,791건의 구매가 확인됐다. 이는 최종심 선고에 대한 분석인데다 중복구매 등의 가능성도 있지만 한해 평균 약 256건의 음성적 구매가 이뤄진 셈이다.
구매자들은 ‘미프진(미페프리스톤) 임신중절약 온라인 공식 판매처’, ‘A약국 미프진 온라인 공식홈페이지’ 등의 온라인 광고를 보고 약을 샀다. 하지만 실제로 주문한 약을 받은 경우는 701건(39.1%)에 불과했다. 대부분 밀수입한 중국산 복제약이나 낙태약(미비사동편, 미색전립순편 등)을 정품으로 속여 보냈기 때문이다. 기록상 ‘진짜약’이 배송됐더라도 정품 여부는 확인할 수 없어 가짜약이 더 유통됐을 가능성은 높다.
프랑스 제약사가 개발한 미프진은 낙태가 합법인 미국 등에서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초기 임신중절에 쓰이는 약이다. 미프진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5년부터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면서 6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이를 판매할 경우 판매자가 처벌받는다. 하지만 임신중절이 필요한 여성들은 건강을 담보로 음지에서 위험한 구매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구매자들은 온라인상 부정확한 정보나 불법 유통업자의 설명에만 의존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조사결과 2017년 낙태경험자 중 74명(9.8%)이 약물 낙태를 시도했으나 이중 71.6%인 52명이 임신중절에 실패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만약 도입된다면 의료진 처방에 따라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은 임신중단에 대한 여성들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추세에 발맞춰 미프진과 같은 유산유도약 합법화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불법인 탓에 제대로 상담도 못받고, 가짜제품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아 여성들이 오히려 더 큰 위험으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의 제이 공동집행위원장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관련 법안이 어떻게 개정되든 간에 현행 모자보건법상 허용된 임신중절사유(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등)에는 먼저 약물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산유도약 허용 논의는커녕 안전성 검토도 첫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모자보건법 개정 후에나 검토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낙태의 방법을 ‘수술’로만 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약물적 방법까지 포함하는 법 개정이 먼저 이뤄져야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회에는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정미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돼있지만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에서 지난 7월12일 단 한 차례 논의된 채 잠자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낙태 여성, 낙태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토록 규정한 형법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형법과, 예외적 낙태허용조건을 규정한 모자보건법 개정시한도 2020년 12월로 못박았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들의 위험한 유산유도약 구매는 계속되고 있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는 여성들의 선택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대신 이들의 인권과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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