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日 장관, “언변은 화려한데 내용은 없어” 비판
SNS에선 패러디 봇물… 한국 “박근혜 화법 연상시킨다”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다. 촌스러운 설명은 필요 없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일본 환경장관이 22일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 참석 차 뉴욕을 찾아 “기후변화에 섹시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논란에 휘말리자 이후 내놓은 발언이다.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의 차남으로 차기 총리 지지율 조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위협할 만큼 인기를 누리며 ‘포스트 아베’, ‘일본 정계의 프린스’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고이즈미 장관. 하지만 그의 ‘뜬구름 잡는’ 독특한 화법은 엇갈린 평가를 받는다. 허세를 부리는 중2병처럼 화려하고 멋 부린 그의 튀는 발언이 시가라는 뜻의 ‘포엠(Poem)’이라고 부르는 패러디까지 일본 온라인에서 쏟아질 정도다.
고이즈미 장관의 화법은 환경장관이 된 이후 공개적인 발언 기회가 잦아지며 논란도 커지는 모양새다.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고 정작 어려운 문제는 답변을 않고 넘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수습 대책이었다. 고이즈미 장관은 이달 17일 원전사고로 인한 오염토를 30년 내로 지역 바깥으로 가져가 처리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에 대해 “30년 후라면 저는 몇 살일까 하고 원전사고 직후부터 생각해왔다. 아마 건강하다면, 그 30년 후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말씀드릴 수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뜬금없는 말을 했다.
이어 20일에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를 두고 한국 등에서 우려가 나온다는 기자의 질문에 “(후쿠시마) 어민이 요즘 (생선 종류인) 눈볼대가 잡힌다고 해서 ‘저 눈볼대 엄청 좋아하니 다음에 같이 먹자’고 했다”며 “그러자 기뻐하는 얼굴이 기분 좋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때문에 그런 여러분이 또 상처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런 문제에도 똑바로 맞서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가 ‘대처 방법을 물었지 눈볼대 얘기를 한 게 아니다’라고 되묻자 “그것도 엮여 있다”며 명확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
‘섹시’ 발언이 나온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도 해당 발언만 도마에 오른 것이 아니다. 고이즈미장관은 화석연료 감소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줄이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묻는 질문에는 한참 뜸을 들이다 “나는 지난주에야 겨우 환경장관이 됐다”며 회피했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 스테이크를 먹으러 간 점도 빈축을 샀다. 환경단체들은 육식을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의 후광에 더해 준수한 외모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온 그의 행보가 실망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고이즈미 전 총리의 뛰어난 연설 실력을 물려받아 선거 때마다 지원 유세를 펼치던 고이즈미 장관이 정작 ‘각본 없는’ 발언에서는 당연하면서도 장황한 표현만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매체 주간문춘(週刊文春)은 최근 고이즈미 장관에 대해 “내가 후쿠시마로 가면 눈볼대가 잡힌다는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정치평론가 이토 아쓰오(伊藤惇夫)는 “언변은 화려하지만 정작 내용은 없고 허술하다”며 “향후 국회에서의 답변 등으로 진가가 드러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신지로가 할 것 같은 말’이라며 그의 화법을 따라 하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고 도쿄신문이 23일 보도하기도 했다. ‘홍기백기(국내에서는 청기백기)’ 놀이를 설명하면서 “빨간색을 들고 흰색을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빨간색과 흰색이 올라간다”라고 길게 풀어 쓰는 식이다. 한 일본 누리꾼은 해당 놀이를 하면서 “30년 후 내가 몇 살일까, 이 말의 뜻은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의미 불명의 말을 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고 즐거워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화법을 떠올리게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 누리꾼들은 “일본의 차기 총리 후보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며 고이즈미 장관이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과거 국무회의 등 공식석상에서 ‘혼이 비정상’ ‘우주의 기운’ 등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자주 사용했고, 당시 온라인에서는 대통령의 말을 해석해주는 ‘박근혜 번역기’가 나오기도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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