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알 권리로 포장한 ‘트루먼 쇼’를 멈춰라

입력
2019.09.27 04:40
31면
0 0
학생의 학교생활기록을 작성하고 이를 지켜야 하는 교육자로서 묻는다. 개별 의원이 권한을 남용하여 불법으로 자료를 취득하고, 이를 공개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입에 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언론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알아야 할 권리가 국민 누구에게 있는가? 그건 조국의 딸이어서도 안 되고, 나경원의 아들이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사진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학생의 학교생활기록을 작성하고 이를 지켜야 하는 교육자로서 묻는다. 개별 의원이 권한을 남용하여 불법으로 자료를 취득하고, 이를 공개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입에 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언론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알아야 할 권리가 국민 누구에게 있는가? 그건 조국의 딸이어서도 안 되고, 나경원의 아들이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사진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SF 영화는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1998년 개봉된 영화 ‘트루먼 쇼’도 어느덧 현실이 됐다. 영화 속 소재인 ‘몰카’는 이미 사회문제가 돼 급기야 우리나라도 사생활 보호를 위해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이 법에 둔감해서 문제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빼내 이를 정략적으로 공개하는 일이 늘고 있다. 올해만 해도 곽상도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 손자의 학적자료를 공개하는 일이 있었다. 주광덕 의원은 아예 조국 장관 딸의 학교생활기록부 내용까지 공개했다. 이에 질세라 전희경 의원이 공개한 ‘출신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현황’ 내용은 부동산 사이트에 돌아다니고 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에서 민감한 개인정보가 불법 취득돼 공개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더니 해당 의원들은 “적법하게 수집한 정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헌법 제61조는 개별 의원이 아닌 국회에 서류 제출 요구권을 주고 있다. 또 마구잡이로 서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회법’ 제128조에 따라 본회의, 위원회, 소위원회 의결 등의 절차를 거쳐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공개돼 문제가 된 자료들은 모두 이 절차를 지키지 않고 개별 의원이 권한을 남용해서 받은 것이다.

이를 문제 삼으면 꼭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라는 말을 한다. 언론도 이 말을 곧 잘 인용한다. 며칠 전 모 방송 저녁뉴스 시간 앵커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라는 말로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긴 수사 내용을 “혐의” “정황”이라는 제목을 달고 거리낌 없이 보도했다. 확인된 사실이 아닌 수사기관에서 유출한 것으로 보이는 혐의와 정황을 마치 사실로 확정짓고 있는 셈이다.

헌재가 국민의 알 권리를 언론의 자유와 동전의 양면 같은 기본권으로 해석했지만, 헌법에 이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있다. 이 법 제1조에서 ‘공공기관이 보유ㆍ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공개 청구 및 공공기관의 공개 의무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國政)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법의 목적을 밝힐 때 나온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법률에도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서라도 자료 제공과 공개에 관한 절차를 두고 있다. 또 설령 그 절차를 따르더라도 민감한 개인정보는 공개하지 못하도록 ‘비공개 대상 정보’ 조항을 따로 두고 있다. 학생 학교생활기록도 여기에 해당한다. 나아가 ‘초ㆍ중등교육법’ 제30조의 6(학생 관련 자료 제공의 제한)도 학생 동의 없이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같은 법 제67조와 ‘개인정보 보호법’ 제71조에 따라 제공자와 공개자를 모두 엄하게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의 학교생활기록을 작성하고 이를 지켜야 하는 교육자로서 묻는다. 개별 의원이 권한을 남용하여 불법으로 자료를 취득하고, 이를 공개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입에 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언론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알아야 할 권리가 국민 누구에게 있는가? 그건 조국의 딸이어서도 안 되고, 나경원의 아들이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법을 어기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를 자꾸 들먹이니 헌법 조항 몇 개를 들어 호소한다.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했다. 검찰은 국회의원도 똑같이 수사하라.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했다. 정치인들은 어떤 이유로라도 학생의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마라.

제21조 제4항 “언론ᆞ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했다.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 보도를 멈추고 진실만을 보도해 달라.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