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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 용의자’ 이춘재 출근길, 1ㆍ3차 현장에 새겨진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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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 용의자’ 이춘재 출근길, 1ㆍ3차 현장에 새겨진 그날

입력
2019.09.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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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ㆍ7ㆍ9차와 달리 여전히 옛 모습 

1986년 12월 발생한 화성연쇄살인 3차 사건 현장인 경기 화성시 안녕동 일대.
1986년 12월 발생한 화성연쇄살인 3차 사건 현장인 경기 화성시 안녕동 일대.

“저쪽 축대 부근 논두렁에서 끔찍한 일을 저질렀지.”

지난 24일 오후 경기 화성시 안녕동(전 태안읍 안녕리)에서 30년 넘게 한식당을 운영한 자영업자 A씨의 손가락이 멀지 않은 논두렁을 가리켰다. 1987년 4월 화성연쇄살인 3차 사건(발생은 1986년 12월 추정) 피해자인 권모(당시 24세)씨가 살해 뒤 약 4개월 만에 암매장 상태로 발견된 곳이다.

A씨는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고 버스를 타고 병점으로 떠났다는 얘기가 돌았다”며 “4차 사건도 버스정류장에서 벌어져 마을 주민들은 해가 떨어지면 버스정류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화성연쇄살인 1ㆍ3차 현장은 경찰이 최근 용의자로 지목한 이춘재(56)의 당시 출근길이었던 안녕동 일대다. 이씨는 군에서 제대한 1980년대 말 안녕동에 있는 한 전기회사를 다녔다. 이곳에서 출발해 1ㆍ3차 현장까지 걸어보니 모두 20분이면 닿는 거리였다. 이씨가 결혼 뒤 충북 청주시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던 태안읍 진안리(현 진안동)까지는 6㎞ 남짓이다. 버스로는 20분이 안 걸리는 거리다. 그때나 지금이나 안녕동에서 진안동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하나 뿐이다.

이씨의 DNA와 희생자 유류품에서 나온 DNA가 일치한 5ㆍ7ㆍ9차 사건 현장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는 등 풍경이 확 달라졌지만 1ㆍ3차 사건 현장은 아직도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1986년 9월 1차 희생자 이모(당시 71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던 목초지 주변에는 33년이 흐른 지금도 고추와 배추밭이 즐비했다. 트랙터 길이었던 농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돼 차량들이 지나다녔지만 고개를 돌리면 온통 푸른색만 눈에 들어왔다. 가로등이 없었고 근처에 인가도 보이지 않았다.

1차 사건 현장 근처에서 고추밭을 일구던 농부 B씨는 “30여 년 전 안녕동은 목장이 많던 마을이었는데, 목초지에서 시신이 발견된 1차 사건 때만 해도 마을사람들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33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B씨가 받았던 충격은 여전한 듯 했다. “워낙 인적이 드물고 으슥해 날이 어두워지면 불현듯 그때가 떠오른다.”

1986년 9월 화성연쇄살인 1차 사건이 발생한 경기 화성시 안녕동 일대. 최은서 기자
1986년 9월 화성연쇄살인 1차 사건이 발생한 경기 화성시 안녕동 일대. 최은서 기자

3차 피해자 권씨가 발견된 장소 주변에도 아직 흔한 포장도로조차 깔리지 않았다. 낮에도 사람이 다니지 않아 풀들이 허리춤까지 자라 있었다. 권씨는 야간근무를 하는 남편에게 도시락을 전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다 변을 당했다.

인근 주민은 “남편은 충격을 받아 바로 공장 일을 그만 두고 떠난 걸로 안다”며 “3차 사건 이후엔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다른 주민은 “경찰이 일러준 대로 빨간 옷을 내다버리거나 벌벌 떨며 일찍 귀가하는 것 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이곳은 아직도 그대로라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경기남부경찰청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는 DNA 일치가 확인된 5ㆍ7ㆍ9차 사건 이외에 나머지 사건 희생자 유류품에 대한 DNA 검증을 진행 중이다. 연쇄살인으로 이름 붙은 사건 이외에도 86년 이전 화성과 수원 일대 비슷한 수법의 강간사건, 91년부터 이씨가 청주에서 처제 살해로 검거되기 전까지 발생한 미제사건 등도 다시 파악하고 있다.

화성=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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