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감독 브라이언 싱어)의 감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무려 994만 관객이 열광한 이 작품은 '퀸 열풍'을 이끌어내며 지난해 말 극장가를 완전히 장악했다. N차 관람, 관객 떼창은 물론 각종 음원차트를 휩쓸며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과시했던 바다.
국내 관객에게 이름조차 생소했던 배우 라미 말렉은 프레디 머큐리 역을 기막히게 소화하며 단숨에 톱스타로 떠올랐다. 전작들을 통해 청초한 미모로 눈길을 붙들었던 루시 보인턴 역시 프레디 머큐리의 첫사랑 메리 역을 사랑스럽게 그려내 존재감을 다졌다. 영화 속에서 이뤄지지 못한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은 현실에서 완성, 공개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음악·연출·연기 3박자가 기막히게 맞아떨어진 '보헤미안 랩소디' 덕에 음악영화에 대한 만족감과 기대감도 한껏 높아진 상태다. 물론 그 이전에 '비긴 어게인'(2014, 관객수 344만 5310명) '라라랜드'(2016, 관객수 360만 918명) 등의 음악영화가 사랑 받긴 했지만, '보헤미안 랩소디'가 방점을 찍은 건 자명한 사실이다.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예스터데이'에 관객들의 관심이 쏠린 것도 어찌 보면 당연지사. 비틀즈의 명곡을 스크린으로 옮겼고, 실력파 가수 에드 시런이 직접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린 이들도 많을 것이다.
'예스터데이'는 하루하루 힘겹게 음악을 하던 무명 뮤지션 잭(히메쉬 파텔)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전세계가 동시에 정전이 되며 벌어지는 기이한 일을 다룬다. 다음 날 세상에선 비틀즈가 사라지고, 오직 잭만이 그들의 음악을 기억하게 된다.
특별한 기회를 만난 잭은 비틀즈의 곡들을 활용해 세계적인 스타가 될 운명에 놓인다. 한결같이 곁을 지켜온 매니저 엘리(릴리 제임스)의 응원에 힘입어 잭은 점점 꿈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톱가수 에드 시런이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우선 신선한 발상이 눈길을 끈다. 비틀즈가 구글 검색창에서조차 완전히 사라진 세상에서 그의 노래를 부르며 스타가 된다니, 재미있는 설정이다. 그러나 참신한 콘셉트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루한 전개와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스토리 전개가 곧바로 실망감을 안긴다.
특히나 비틀즈의 명곡 활용 능력이 최악으로 꼽힌다. 이렇게 소비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영화에서 비틀즈의 곡들은 아무런 감동을 안기지 못한다. 코미디 쇼에서나 볼법한 단순한 개그 코드가 웃음 대신 탄식을 불러올 뿐이다. 이를테면 잭이 부모 앞에서 '렛잇비'의 첫 소절을 반복해 부르는 장면 등이 실소의 중심에 있다.
대니 보일 감독에게 과거의 펄떡이던 에너지와 연출력을 지나치게 기대한 탓일까. 지난 1997년 선보인 문제작 '트레인스포팅'으로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감독이 아니었던가. 이 작품의 주연배우였던 이완 맥그리거와 재회한 '인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한 '비치', 그리고 '28일후' '밀리언즈'등의 작품을 통해 그는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확실히 인정 받았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아카데미 8개 부문 석권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예스터데이'는 음악영화라기보다는 단순 로맨스 영화에 가깝다. 잭을 오랜 기간 짝사랑한 엘리가 결국 그를 포기하고 다른 남자에게 떠나자, 잭이 뒤늦게 후회하고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라도 비틀즈의 곡들이 현명하게 사용됐다면, 관객은 이 영화의 가치를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일례로 지난해 개봉한 '스타 이즈 본'의 경우, 뻔한 내용을 다뤘음에도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 바 있다. 혼이 담긴 배우들의 열연과 음악이 선사하는 쾌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가 부른 듀엣곡은 콧잔등이 시큰해질 만큼의 감동이 있었다.
'예스터데이' 관람 후 극장을 나서면서, 영화를 보지 않은 어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차라리 집에서 비틀즈의 노래를 듣는 것을 추천한다"는 한 관객의 평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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