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대 80’을 처음 공론화한 이는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다. 그는 100여년 전 유럽 국가들의 소득분포 조사에서 상위 20%의 부(富)가 전체의 80%에 달함을 통계적으로 확인했다. ‘파레토 법칙’의 80과 20은 숫자 자체보다 상징성이 더 크다. 전체의 대부분(80)이 소수의 요소(20)에 의존 혹은 좌우된다는 것이다. 약간의 오차를 인정한 ‘78 대 22’는 ‘우주의 법칙’으로 불린다. 사소한 다수의 합이 소수 핵심을 추월한다는 ‘역파레토 법칙’도 있다.
□ ‘20 대 80’은 때로는 가시적 현상을 설명하고, 때로는 극단적으로 대비하고, 때로는 사회 변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틀로 활용됐다. 우량 고객 20%가 백화점 매출의 80%를 올린다, 80%의 회사원이 겨우 20%의 업무를 처리하는 반면 업무의 80%는 나머지 20%가 다 하더라, “인공지능(AI)이 상용화되는 미래 사회에서는 인간의 20%만이 의미 있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등등.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분야(현상)에서 유사한 패턴이 확인되는 듯한데 그 이유가 명확히 설명된 적은 없다.
□ 2000년대 초반 전혀 다른 시각에서 ‘20 대 80’을 다룬 두 권의 책이 입소문을 탔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적게 투입하고 많이 남기는, 적게 싸우고 더 풍요로워지는 길을 제시한 리처드 코치의 ‘80/20 법칙’은 여러 성공 사례와 시간 관리에 대한 제언 등으로 자기계발서의 전형으로 수용됐다. 한스 페터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이 쓴 ‘세계화의 덫’은 지구촌을 단일 시장으로 통합시킨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이 결과한 현실 고발서다. 많은 사람이 양극화 심화, 투기자본의 횡행, 대의민주주의 위기 등의 실체를 좇아갔다.
□ ‘조국 사태’의 와중에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가 주목받고 있다. ‘기회 사재기’를 독점한 중상류층(20%)의 위선과 불공정을 폭로해 “불평등 논의의 흐름을 바꿨다”는데, 동(動)하지가 않는다. 기회 사재기의 방법보다 그 동기에, 계층의 하향 이동성을 높이지 ‘않고’ 작은 양보조차 하지 ‘않는’ 이유에 더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누구나 언제든 ‘20 대 80’을 효율 문제로 체화할 태세인 사회에서 계급적 실체도 모호한 중상류층의 ‘행태’가 불평등의 근원일까 싶어서다.
양정대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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