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발표 한 달 뒤 멜론서 1위… 1990년대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 나올 법한 감성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통기타를 치며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마음을 노래하는 사내의 모습이 어딘가 짠하다. 사연이 있다. 이 노래 작사가는 노래하는 이의 전 여자친구.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방송사 PD인 손범수(안재홍)는 이 노래를 부르며 아린 기억을 달랜다. 곡에 담긴 사연을 아는 방송작가 임진주(천우희) 앞에서 노래를 부른 상황이 황당하다가도 손범수가 정색하고 노래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 극은 순식간에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이 된다. 안재홍은 이 곡을 달콤쌉싸름하게 불러 묘한 맛을 낸다. ‘멜로가 체질’의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안재홍은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촬영 전 기타 연주를 따로 배웠다고 한다.
안재홍이 부른 곡은 가수 장범준이 작사, 작곡한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흔꽃샴푸’)’다. 이 곡이 TV 밖에서 요즘 인기다. 장범준이 부른 ‘흔꽃샴푸’는 지난 23일 음원 사이트 멜론 등에서 일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23일 곡이 발표된 뒤 꼭 한 달 만의 차트 순위 역주행이다.
‘흔꽃샴푸’는 25일에도 실시간 음원 차트 1~2위를 오가고 있어 장기 히트의 조짐이 엿보인다. 드라마 시청률이 평균 1%대로 낮아 OST 발매 당시 처음엔 크게 주목 받지 못했지만, 뒤늦게 입소문을 탄 결과다.
장범준 특유의 꾸밈없는 가사와 구수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곡은 빛을 봤다. 노랫말에 대한 반응이 특히 뜨겁다. 장범준은 곡에서 “지금 집 앞에 기다리고 때론 지나치고 다시 기다리는”이라며 “꽃이 피는 거리에 보고파라 이 밤에”라고 노래한다. 풋풋하면서도 사랑에 서툰 순수한 청춘은 모습에 첫사랑의 추억은 불꽃놀이처럼 터진다. 이 곡이 ‘제2의 벚꽃 연금(tjsm****)’이 될 것이란 반응도 나온다. 봄만 되면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벚꽃 엔딩’(2012)처럼 히트할 것이란 기대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 ‘흔꽃샴푸’엔 장범준이 전성기였던 록밴드 버스버스커의 1집 정서가 물씬 담겼다”며 “1990년대 인기 청춘 드라마인 ‘내일은 사랑’에 나올 법한 감성이라 30~40대에겐 향수를, 10~20대에겐 뉴트로(New와 Retro의 합성어)의 재미를 준다”고 평가했다.
곡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OST를 제작한 마주희 CJ ENM 뮤직크리에이티브스튜디오 팀장이 들려준 제작 과정은 이랬다. ‘멜로가 체질’을 연출한 이병헌(영화 ‘극한직업’ 등) 감독은 대본에 ‘손범수가 ‘봄의 노래’를 부른다’고 썼다. 이 내용을 본 마 팀장은 장범준에게 연락했다. ‘봄의 노래’하면 장범준이란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대본을 받은 장범준은 올 봄부터 곡을 썼다. 드라마 첫 촬영 전에 곡이 나와야 배우가 노래를 연습할 수 있어 작업을 일찍 시작했다. 장범준은 드라마에 쓰일 한 곡을 위해 여러 곡을 만들었고, 이 감독은 그중 ‘흔꽃샴푸’를 택했다. 곡은 3분이 채 안 되고, 음역이 높지 않다. 따라 부르기 쉬운 게 특징이다. 장범준은 “배우들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가성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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