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

기품 있는 초록 잎새, 선뜻 선뜻 스치는 청량한 가을바람, 매미소리 대신 들려오는 잔잔하고 다채로운 풀벌레 소리... 오감을 열어 다가선 가을을 느끼고 있는데 무엇보다 좋은 냄새들이 코끝에 맴돕니다. 계수나무들의 달달한 향기도 이런저런 국화과 식물들의 서늘한 향기도 이제 시작입니다. 눈보다도 귀보다도 이렇게 향기로 깊어가는 가을은 더욱 가슴 깊이 밀려오는 느낌입니다.

진달래꽃차 / 꽃잎을 모으고 - 꽃술등을 제거하고 – 약한불에 덖음 반복 – 30초쯤 우리기
백목련꽃차 / 꽃봉오리를 따서 – 꽃받침 제거 – 찌고 식히기 반복 – 말려 – 3분간 우리기

더욱이 수목원에서 꽃차를 마시며 식물들을 만나는 전시를 둘러보고 나니 온종일 일상에서 가을향기가 맴도는 듯 행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전시제목 ‘마셔서 행복한 우리 식물이야기’가 딱 맞춤이다 싶습니다. 국립수목원에서는 오랫동안 전국을 돌며 어르신들이 민간에서 전통적으로 식물을 이용했던 구술을 듣고 정리해 왔습니다. BT(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를 비롯해 식물을 활용할 수 있는 현대기술이 매우 발달한 터에 어떤 식물의 어떤 기능에 착안점을 둬야 하는지 선조들의 전통 지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사된 결과를 정리해 보니 여러 방식으로 이용된 민속 식물은 1,095종류였고 그중 차나 음료로 쓰인 것은 146종류였는데 이 가운데 절반은 오미자나 모시풀과 같이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나머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식물에 담긴 이야기나 쓰임새를 알려주고, 일부는 마셔보기도 하는 소박하지만 유용한 시도였습니다.

아까시나무 꽃

봄부터 피었던 여러 식물의 꽃이나 잎, 혹은 열매들을 말리고 덖어내고 때론 쪄서 갈무리해 두었다가 마실 수 있는 우리 꽃차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저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아까시나무 꽃송이에 말린 청귤을 약간 넣은 차였습니다. 말하자면 두 재료를 브랜딩한 차였는데, 투명해진 꽃잎 같은 차 빛이 우려지고, 은은한 꽃향기가 뿜어 나오며, 약간 들어간 청귤이 개운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그 따뜻한 차는 온몸으로 퍼져나가 맑은 기운을 몸에도 마음에도 담아주더군요. 지난봄 지천으로 널려있던 아까시나무 꽃송이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시간을 제게 줄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 밖에도 바닷가의 야생장미라고 할 수 있는 해당화의 진분홍빛 꽃잎, 증기로 쪄낸 목련 꽃잎, 덖어 낸 진달래꽃, 산과일로 이름난 으름꽃은 청으로 만들어져 즐거움을 더해 주었습니다.

백리향

문득 3대에 걸친 친척들이 모여 차를 주문하면서 “아아? 따아?”하며 온 가족들이 함께 웃었던 지난주 일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이랍니다. 알아듣는 사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고 줄임말 문화의 적절성 등을 논하며 짧지만 세대 간에 다 함께 소통했던 시간이 되더라고요. 하물며 우리 산야에 혹은 맨드라미나 메리골드처럼 마당에 심어진 식물들을 알아보고, 그 꽃잎들을 갈무리해 여러 사람과 때론 과정까지도 공유할 수 있다면, 혹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참 향기로운 행복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한 해에 한가지씩이라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우리 나라의 ‘타임’이라고 할 수 있는 ‘백리향’부터 도전합니다. 향기는 나누고 행복은 쌓고, 건강은 덤으로 얻으려고요.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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