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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선 ‘예고편’만… 나영석의 ‘5분 예능’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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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선 ‘예고편’만… 나영석의 ‘5분 예능’이 의미하는 것

입력
2019.09.25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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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예능’인 tvN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이수근과 은지원의 벌칙 같은 아이슬란드 3박 4일 여행기를 담은 콘텐츠다. tvN 제공
‘5분 예능’인 tvN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이수근과 은지원의 벌칙 같은 아이슬란드 3박 4일 여행기를 담은 콘텐츠다. tvN 제공

“화장실 가시면 안 됩니다!”. 유튜브 진행자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깊은 바다에서 길어 올린 보물상자의 ‘언박싱(Unboxingㆍ개봉)이라도 앞둔 분위기다. “참 혜자스러운(풍성한) 방송이었습니다. 무려 6분이 나갔네요.” 5분으로 편성됐던 tvN 새 예능프로그램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신서유기 외전)’ 방송 분량이 1분 더 늘었다며 한 농담이었다.

인터넷 유행어를 능숙하게 써 가며 ‘불금’에 유튜브 시청자와 소통에 나선 이는 나영석 CJ ENM PD. 그는 지난 20일 오후 10시 40분쯤 ‘신서유기 외전’ 첫 방송 시간에 맞춰 서울 상암동 작업실에서 온라인 생방송을 진행했다.

나영석 CJ ENM PD가 지난 20일 서울 상암동 작업실에서 유튜브 생방송을 하고 있다.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 첫 공개로 이뤄진 작업이었다. ‘삼시세끼 산촌편’의 김대주 작가가 실시간 채팅방에 ‘꼴에 예고도 있네’란 댓글을 달았다. 5분 방송에 할 건 다 한다는 취지의 농담이었다. 양승준 기자
나영석 CJ ENM PD가 지난 20일 서울 상암동 작업실에서 유튜브 생방송을 하고 있다.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 첫 공개로 이뤄진 작업이었다. ‘삼시세끼 산촌편’의 김대주 작가가 실시간 채팅방에 ‘꼴에 예고도 있네’란 댓글을 달았다. 5분 방송에 할 건 다 한다는 취지의 농담이었다. 양승준 기자

 ◇유튜브 진행 나선 나PD “직업 미래 어두워” 

이례적 행보였다. 나 PD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담을 쌓고 산다.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톡을 2012년에도 쓰지 않고 휴대폰 문자로만 연락해 이우정(‘꽃보다 할배’와 ‘응답하라’ 시리즈 등) 작가에게 원시인이라 불렸다. 2001년 KBS에 입사한 나 PD는 TV프로그램 제작 유전자를 물려받은 ‘방송 PD’의 전형이다. 그가 유튜브 채널 ‘나나나’(나 PD 별명)를 열고 온라인 방송 진행까지 나선 것은 새로 기획한 콘텐츠로 유통 방식에 변화를 줬기 때문이다. ‘신서유기 외전’은 지난 20일부터 10주(10회 예정)에 걸쳐 금요일에 5분 방송된다. 방송사가 ‘5분 신규 예능’을 정규 편성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5분 방송을 TV로 ‘본방 사수’하려는 시청자가 얼마나 될까. 나 PD는 TV 대신 온라인을 주 플랫폼으로 활용한다. ‘신서유기 외전’ 1회는 TV에 6분 방송됐지만, 유튜브에선 총 20분 분량으로 볼 수 있다. TV 방송은 ‘예고편’이고, 온라인 콘텐츠는 ‘본편’이다. 유튜브가 1순위 채널이고, TV는 후순위가 됐다.

‘신서유기 외전’의 TV 편성 시간을 홍보 영상 수준으로 짧게 한 이유는 무얼까. tvN의 고위 관계자는 “최소한의 방송 문법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한 후 온라인에서 시청자의 소비 패턴을 보고, 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 한 실험”이라고 말했다. 모험에는 나선 나 PD도 유튜브 생방송 댓글로 미디어 변화 과도기를 직접 확인하고서는 놀란 눈치다. “다들 TV가 없다고 하시네요. 미국에 계신 분들, 자취하시는 분들, 기숙사에 사는 분들... 우리 직업(방송사 PD)의 미래가 굉장히 어두워.”

지난 8월 방송된 JTBC ‘한끼줍쇼’에서 시민 출연자가 방송인 장성규의 온라인 콘텐츠 ‘워크맨’을 보고 문을 열어줬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방송인 강호동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JTBC 방송 캡처
지난 8월 방송된 JTBC ‘한끼줍쇼’에서 시민 출연자가 방송인 장성규의 온라인 콘텐츠 ‘워크맨’을 보고 문을 열어줬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방송인 강호동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JTBC 방송 캡처

 ◇ ‘한끼줍쇼’ 보다 ‘워크맨’? Z세대의 세상 

TV에서 온라인용 콘텐츠로 권력이 옮아가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 8월 종합편성(종편)채널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의 한 장면. 서울 상암동의 취업준비생 최모씨는 방송인 강호동과 장성규를 집에 들여 그들의 저녁 식사 제안을 수락해 놓고 “죄송한데, 이거 ‘한끼줍쇼’인가요”라고 되묻는다. 놀란 강호동이 “뭐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어 주신 거예요”라고 묻자 최씨는 “전 ‘워크맨’밖에 못 봐서”라고 답한다. ‘워크맨’은 장성규가 여러 직업을 체험하는 유튜브 콘텐츠다.

청년인 최씨에게는 ‘한끼줍쇼’와 강호동 보다 ‘워크맨’과 장성규가 더 관심사고, TV보다 온라인이 더 참여하고 싶은 놀이터다. TV 방송보다 온라인 콘텐츠를 더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의 모습이다. 디지털마케팅업체 메조미디어의 ‘2018 디지털 동영상 이용 행태 조사’(15~59세 남녀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전 연령대가 TV(32%)보다 온라인(42%)에서 동영상 콘텐츠를 많이 본다. 10~20대가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온라인 콘텐츠의 위력은 수치로 나타난다. ‘워크맨’의 에버랜드 편은 조회수 1,016만건(24일 기준ㆍ8월 공개)를 기록했다. 전 세계 K팝 팬들이 보는 인기 아이돌그룹 뮤직비디오 조회 수와 맞먹는 폭발력이다.

방송사들은 온라인 전용 콘텐츠 제작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추세다. KBSㆍMBCㆍSBS 등 지상파보다 후발 매체인 케이블채널과 종편이 적극적이다. 그룹 g.o.d의. 멤버인 박준형이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명소를 방문하는 예능 ‘와썹맨’ 등을 기획한 스튜디오 룰루랄라(JTBC)와 웹 드라마와 예능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tvN 디지털 스튜디오 D가 대표적이다. 방송관계자들에 따르면 tvN에서 TV 예능으로 시청률 10%를 넘어선 A PD는 내년 온라인 전용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림 4 방송인 장성규(맨 오른쪽)가 유튜브 예능 ‘워크맨’에서 놀이공원 직업 체험에 나서 춤을 추고 있다. ‘워크맨’ 영상 캡처

온라인으로 점점 기우는 콘텐츠 유통 환경 변화에 지상파도 고민이 많다. KBS에서 MCN 등 뉴미디어 전략을 이끌었던 고찬수 PD는 “‘전국노래자랑’ 예선에 의외로 10대가 많이 온다”라며 “프로그램이 지닌 B급 정서가 요즘 10~20대의 감수성과 맞는 것으로 보여 ‘전국노래자랑’의 유튜브 콘텐츠화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5분 분량으로 ‘무한도전’ 인기 편을 재편집해 내보내는 MBC ‘5분 순삭’ 화면 우측 상단엔 짧은 방송 시간 흐름을 시청자에 보여준다. MBC 방송 캡처
5분 분량으로 ‘무한도전’ 인기 편을 재편집해 내보내는 MBC ‘5분 순삭’ 화면 우측 상단엔 짧은 방송 시간 흐름을 시청자에 보여준다. MBC 방송 캡처

 ◇”음식물 쓰레기도 먹어요” 온라인화의 폐해 

‘워크맨’은 지난 7월 채널을 개설한 지 두 달여 만에 구독자 수 259만명, 누적 조회 수 9,696만 건을 기록했다. 촬영 중 “조퇴해도 돼?”라고 묻는 장성규의 거침 없는 말과 몸짓, 1초마다 장면이 바뀌는 ‘속사포 영상 편집’으로 인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B급 캐릭터’와 숨 쉴 틈 없이 빠른 호흡을 앞세운 온라인 콘텐츠의 문법은 TV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MBC는 이번 추석 명절 연휴에 특집 프로그램 ‘5분 순삭’을 내보냈다. ‘무한도전’과 ‘거침없이 하이킥’ 시리즈 등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5분 단위로 편집한 콘텐츠다. 과자를 먹듯 5~10분이란 짧은 시간에 콘텐츠를 소비하는 스낵 컬처 시대, 유튜브에서 짧은 동영상을 보는 데 익숙한 시청자의 콘텐츠 소비 변화에 맞춰 프로그램도 시간이 아닌 분 단위로 쪼개지고 있다.

마냥 반길 경향만은 아니다. 방송사가 TV에 온라인 콘텐츠의 유행 문법을 적극적으로 끌어오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도 먹어요”(‘한끼줍쇼’), “모유 생각나요”(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2’) 등 장성규가 방송에서 ‘선’을 넘는 발언을 하고, 제작진이 이를 여과 없이 내보내면서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규제가 없어 자극적인 온라인 콘텐츠 속 인기 캐릭터를 고스란히 TV로 가져와 생긴 부작용들이었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온라인 콘텐츠에선 빠른 편집에 가려졌던 문제가 TV에선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보다 긴 호흡의 TV에선 출연자가 한 발언의 맥락과 그 말로 인한 상대방의 반응과 분위기가 배제되지 않아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방송사가 온라인 콘텐츠 전략을 예능에 집중하면서 콘텐츠 다양성 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사ㆍ교양 온라인 콘텐츠 제작이 위축돼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능이 온라인 영상 제작으로 중심축이 옮겨진다면, 시사ㆍ교양은 팟캐스트 중심의 오디오 콘텐츠로 쏠리는 분위기”라며 “시사ㆍ교양 분야의 장기 존립을 위해 방송사가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화에 대해 적극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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