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서 가봐야 할 두 개의 철길 여행지
경암동 철길마을은 근대문화유산거리와 함께 군산을 대표하는 여행지다. 1944년부터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페이퍼코리아 공장과 군산역을 연결했던 2.5km 철로 주변 마을이다. 신문 용지를 실어 나르는 용도로만 이용됐기 때문에 업체가 변경될 때마다 철길 명칭도 ‘북선제지’ ‘고려제지’ ‘세대제지’ 등으로 이름을 달리하며 2008년까지 운영됐다. 컨테이너와 박스 차량 5~10량이 연결된 화물열차가 오전 2차례 공장과 군산역을 오갔다. 경암동에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건 1970년대다. 좁은 선로를 사이에 두고 벽과 벽을 맞댄 채 일렬로 나란히 집들이 들어섰다. 안전을 위해 시속 10km로 서행할 수밖에 없었고, 열차가 지날 때마다 3명의 역무원이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사이 주민들은 문밖에 널어놓았던 농산물과 세간을 집안으로 들여놓았다고 한다.
담장도 없는 선로 변 주택가에 빨랫줄이 걸리고 텃밭을 가꾸던 모습은 이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철길마을의 주택은 예외 없이 상가로 변했다. 옛날 문방구 앞 ‘불량식품’을 연상시키는 먹거리가 선로 변 가게마다 그득하고, 교복 대여점은 그때 그 시절 추억을 소환한다.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과 카페까지 더해 좁은 선로는 언제나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좋게 표현하면 연령을 가리지 않고 추억 여행을 즐기는 ‘핫플레이스’지만, 한편으로 한적하고 분위기 있게 ‘인증사진’을 찍기가 힘들 정도다.
그런 면에서 대비되는 철길 여행지가 군산 임피역이다. 호남선 지선으로 1912년 완공한 군산선의 간이역으로 문을 열었다. 군산선은 일제강점기 호남평야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였다. 군산역과 완주 삼례역 사이의 개정ㆍ대야ㆍ임피역 주변은 드넓은 평야지대로 당시 일본인 지주들이 대규모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임피역은 태생부터 일제의 곡물 수탈을 위한 용도였던 것이다. 지금의 역사는 1936년 신축한 그대로다.
세월이 흘러 임피역은 1995년 간이역으로 격하되고, 화물역으로서의 역할도 사라져 현재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그래도 소규모 간이역의 정취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2002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역 주변에는 객차전시관과 시간을 잃어버린 시실리(時失里)광장이 조성돼 있어 호젓한 시골역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역 내부와 주변 공원에는 임피면 출신 소설가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논 이야기’ 속 인물 동상이 승객을 대신하고 있다. 역 앞 두 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에도 서서히 노랗게 물이 올라 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채만식(1902~1950)이 태어난 곳은 임피면 소재지이지만 채만식문학관은 금강하구둑 남측 강변에 자리 잡았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작은 동상을 중심으로 짧은 생애에 수많은 작품을 남긴 그의 연대기가 정리돼 있다. 문학관 주변은 오솔길과 철길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금강하구둑이 바라보이는 강변 산책로와도 연결돼 있다. 금강생태습지공원도 문학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억새와 갈대가 나부끼는 가을날의 서정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군산=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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