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기업 헬릭스미스(옛 바이로메드)의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후보물질인 ‘엔젠시스’의 글로벌 임상시험 3상 일부 결과 발표가 연기되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또다시 충격에 빠졌다.
헬릭스미스는 지난 16~18일 미국에서 엔젠시스의 임상 3상 결과를 분석하던 중 일부 환자가 위약(僞藥)과 엔젠시스를 혼용했을 가능성이 발견돼 별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23일 공시했다. 위약과 혼용 가능성 때문에 엔젠시스의 효과가 왜곡됐기 때문에 정확한 임상시험 결과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 영향으로 24일 주식시장에선 대다수 바이오주들이 약세로 출발했다.
당뇨의 합병증 중 하나인 당뇨병성신경병증은 혈당이 지나치게 높아 신경세포가 손상되면서 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병이다. 엔젠시스는 헬릭스미스가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이다.
임상시험으로 신약 후보물질의 효능을 증명하려면 위약과 후보물질을 각각 투여한 환자들을 별도로 관리하며 결과를 비교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임상에선 엔젠시스의 비교 대상인 가짜약 투여 환자들의 혈액에서 엔젠시스 성분이 검출됐고, 엔젠시스를 투여한 환자들에선 엔젠시스 성분 농도가 너무 낮게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당초 이번 주로 예정됐던 엔젠시스의 글로벌 임상 3상 ‘톱라인’ 발표 역시 불가능해졌다. 톱라인은 임상 일부 결과이긴 하지만, 최종 성패 가능성을 판가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헬릭스미스는 조사단을 구성해 관련 사실을 확인하고, 오는 12월 있을 임상 3상 종료 회의에서 이번 사안을 상세하게 보고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후속 임상 3상을 향후 6개월 안에 시작해서 2021년 말~2022년 1분기 사이에 종료한다는 계획이다.
헬릭스미스의 임상 오류로 제약바이오 업계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올 초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가 성분이 뒤바뀐 사실이 드러나 허가가 취소된 데 이어 한미약품의 비만·당뇨 신약기술을 사 간 다국적제약사 얀센은 지난 7월 개발 권리를 반환했다. 미국에서 임상시험 최종 단계에 들어가 관심을 모은 신라젠의 항암신약 ‘펙사벡’도 환자들에게 예정에 없던 약물이 투여되면서 효능을 판단하기 어려워져 결국 지난달 임상이 중단됐다.
업계의 기대를 모은 굵직한 성과들이 줄줄이 실패하거나 중단되면서 전문가들은 신약개발의 어려움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연구진의 기대와 다른 데이터나 예상치 못한 실험 전개 등으로 고배를 마시는 일이 비일비재한 게 신약개발 과정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한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기술에 자신 있다고 모두 시장에 나갈 수 있지 않다”며 “기술의 상품화는 수많은 실패를 거쳐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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